베트남 바이크투어 2016

2016. 7. 23: DMZ ; 국립묘지; Vinh Moc 터널 등

cool2848 2016. 7. 24. 23:18

22일 저녁 Dong Ha시에 도착하여 예약했던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 늦게 다음날 투어에 대해서 Tam's Cafe에서 영어를 잘하는 전쟁경험 퇴역군인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의 가이드를 받아 몇 군데를 구경했다 (가격 $40.00). 


먼저 동하 시내에 있는 국립묘지.

국립묘지에는 북베트남군인 (베트공 포함?)들만 묻혔다고 한다.

남베트남군인들은 고향에 가서 묻도록 했다고.

당시 남베트남 군인은 월급을 받는 군인이고, 북베트남군인이나 베트콩은 순수한 애국심에서 싸우는 애국자였다는 얘기.


입구의 조각상 밑의 부조들에도 자세히 보면 많은 얘기가 있다.


Quang Tri성은 남북으로 90km 정도와 동서로 80k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성인데, 이 곳에 이런 국립묘지가 72개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신원을 모르는 전사자들의 비석도 많다.

남베트남 군인과 미군은 dog-tag군표를 사용했기 때문에 신원을 확인하기 쉽지만, 북베트남 군인들은 증명서가 종이라서 비가 오거나 하면 쉽게 상해서 오래 되면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그래도 여기에 다들, liet sy (아마도 "열사")라고 확실하게 나라가 전사자를 기억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신원을 아는 경우가 많다.

사망한 날짜나 년도가 전투가 심했을 때가 많다.


묘지는 국가에서 만들었지만, 각 출신성에서는 이들 전사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나름 성의 전사자들을 위한 제사장소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사자들의 이름을 아는 단체묘도 있었고, 모르는 단체묘도 있다.


다음에는 마을에 있는 박물관 외부에 있는 베트남전 당시의 무기들을 구경했다.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러시아제 지대공 포.


미군 탱크와 헬리콥터.


미군 전투기.


그리고 미군의 폭탄들.


다음은 마을에 있는 옛 비행기창고를 찾았다.


주택가에 이런 건물이 있었다.

예전에는 동하는 DMZ 남쪽에 있는 남베트남에 속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여기에 미군들의 비행장이 있고 격납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북베트남이 점령한 후에는 미군이 폭격해서 예날 자신들의 격납고들에 이렇게 폭탄 흔적도 남겼다.


격납고 입구의 철제물에 생긴 총알자국들.


다음에는 지뢰센터에 갔다.


입구 팻말.


내부에 있는 옛 폭탄을 가지고 구성해 놓은 모형.


다양한 폭탄 중 cluster bomb: 작은 알들이 터져 날라가면서 넓은 지역의 사람을 다치게 한다고.


빨간색이 DMZ 주변에 폭격을 받은 빈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하얀연기 표시는 에전트-오렌지 폭격을 받은 곳들이다.

당시 여기 주민 한사람당 폭탄 7?톤에 해당하는 폭격을 받았다고 하며, 이는 베트남 전체를 통해서 가장 심한 폭격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DMZ 가기 전에 있던 Doc Mieu 기지 자리.

앞에 표지판과 표지판 오른쪽에 보면 옛 미군탱크가 일부 보인다.


이 근처 에서 내려다 본 DMZ 부근.

앞에 나무들과 저 멀리의 나무들 사이가 DMZ 경계선이고 그 한가운데 Ben Hai강이 있다.

 

Ben Hai강을 건너는 다리, Dong Hai시에서 22km 북쪽에 위치.

왼쪽의 현재 1번국도의 일부인 다리이고, 원래 다리는 이 자리에 있었지만 폭격맞아 부서져서 다시 만든 다리라고 한다.

오른쪽에 철다리가 옛다리를 복원해서 옆에 만들어 놓은 다리이다.


다리 앞에 남쪽에는 이런 거대한 통일기념 조각상이 옛 남베트남 부대자리(?)에 있다.


이 지점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다리 입구.


다리 중간.

내가 통역/가이드에게도 설명하고, 나중에 박물관에서 만난 미국애들에게도 얘기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아직도 액티브한 DMZ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다리의 중간을 나 혼자서 걸어가니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는 과연 통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우리 마음대로 될 것 같지 않지만...


다리으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다음은 Cu Chi터널 같은, 다른지만, 터널로 유명한 Vinh Moc마을을 갔다.

전쟁 당시에는 폭격이 하도 심해서 주민들이 지하터널을 만들고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물론 북베트남군도 같이 사용했다고.

당시에 있던 열몇(?)개의 터널 중 남아있는 한개.


몇군데 아직도 남아 보이는 폭탄자국.


박물관에 있는 지하터널.

파란 곳이 1차깊이, 빨간 것이 2차깊이, 검은 것이 3차 깊이의 것으로 대략 10메타씩 차이가 난다고 한다.

주로 생활 공간은 10미터 지하, 3차 깊이 터널에는 주로 폭탄이라던지 식량들을 저장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은 대략 500명이 살았는데, 화장실은 하나 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그림.


이 터널생활 중 나은 아이들, 17명(?).

다 들 현재 생존하는 사람들의 어린 사진.


열몇개 중 한 입구.

내려간다.


보강된 터널 통로.

여기는 당시 북베트남 영토이기 때문에 터널이 상당히 크고 높아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다.

Cu Chi 터널이 남베트남 영토 안에 베트콩들이 숨어서 진지 역할을 하는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아래에서 바라본 통풍구.


한 다섯명이 사는 가족공간.

엄청 작다.


통로.


이런 의무실도 잇었다고 한다.


바다로 통하는 통로를 나와서 인도지나해를 바라보며.

사진에서 잘 않보이는 섬에서 식량과 무기들을 이쪽 통로를 통하여 북베트남에서 가져와 다시 서쪽의 산악지대로 가져갔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해안도로.

베트남에 살면서 이렇게 차도에 소나 물소 등을 몰고 가는 경우를 가끔 봤는데 인상적이었다.


호텔로 오는 길에 있는 평화로운 그리고 한적한 바닷가들.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베트남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엿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