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푸페이룽 저 심의용 역의 "장자 교양 강좌"를 읽었다.
지난 주 화요일에 동양고전 특강 시리즈 중에서 장자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서이다.
대학 다녔을 때 분명 약간 작고 흰색의 겉껍떼기가 매끈한 책을 사고 읽은 기억은 나는데,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별 감동이 없이 숫자 채우기식의 독서였던 지 전혀 내용이 기억이 없다.
이번은 좀 다른 것 같다.
"대붕"같은 얘기가 나와도 "쉽게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마음 속에서 단정지어 버리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특강에서 들은 심볼리즘을 가지고 왜 그런 (터무니 없는) 얘기를 하는 지를 생각한다.
그중 아래에 일부 옮겨온 養生主 편의 庖丁解牛 이야기를 옮겼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이 손이 닿고, 어깨를 기대고,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는데 휙휙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이 없고 칼을 넣어 움직일 때 싹싹 소리가 나는데 모두 음률에 맞았다.
"상림"이라는 춤곡에도 어울리고, "경수"라는 악장에도 딱 맞았다.
문혜군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 매우 훌륭하도다. 기술이 어떻게 그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문혜군의 칭찬을 받자 포정은 칼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道입니다.
기술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때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덩치 큰 한 마리 소였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는 소 한마리 전체가 보이지 않더군요.
지금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감각작용을 멈추면 정신이 활발하게 작동합니다.
소의 (天理: 보편적인 구조인)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구조를 따라서 고기 덩어리의 틈새를 가르고 뼈마디 사이의 간격을 벌려서 오직 한 마리 소의 (固然: 개체의 특수한 구조인) 본래적 구조에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경락이 연결되고 뼈와 고기가 붙어 있는 곳까지 모두 괜찮은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어서 포정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통의 주방장은 1개월에 한 번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는 데 쓰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 소를 잡는데 썼는 데도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
두께가 없는 칼날을 틈이 있는 뼈마디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을 움직이는 데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遊刀有餘: 칼을 움직이는 데에 여유가 있다. ---> 솜씨가 좋다.)
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테니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포정이 소를 잡을 때 칼을 쓰는 것처럼 테니스 칠 때 나의 정신과 몸을 움직이는가?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우선 칼을 움직이는 데에 여유가 있다는 글을 보면서 내가 테니스 라켓을 휘드르는 데 여유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우선, 나의 몸은 충분히 잘 움직인다고 보인다.
오랜 훈련으로 나의 스윙은 아주 좋다고 평가되며 내 자신이 봐도 아름다운 때와 측면이 분명히 자주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들에는 너무 힘이 들어가 흐르듯이 치지 못하고 기회를 범실로 바꾸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는 다양한 경우를 탐색하여 최적의 볼을 치는 여유로운 경우가 아니라 그저 급하게 힘으로 밀어부칠 때에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게임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애석하게도 모자라는 점이 많다.
간혹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도 되는 볼도) 서두르거나 (상대방의 볼이 좋아서) 몰려서 치는 것 같다.
물론 상대에 따라서 다르지만, 우리의 이상은 모든 상대와 모든 볼에 대해 어떻게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는가의 여부를 생각해야겠지.
그럼 이렇게 여유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포정이 얘기하듯이 눈으로 보지않고 정신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테니스를 칠 때는 복식이나 단식 테니스 게임에서의 일반적인 상대방의 위치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왼손잡이던가 백이 좋거나 몸이 빠른 것 같은) 상대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생각이 미리 게임을 위한 내적표상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런 모델 위에 그때그때의 상황이 변수로 작용하는 것을 예측하고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국부적인 상황에서의 패턴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변화를 주는 경우도 때때로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저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위치와 상대방이 치는 것을 보고는 그때 그때 상황을 판단하는데 이래서야 전체적인 그림이 부족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지역적인 시각적 정보도 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하고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세게 두드리는 볼을 상대가 받지 못하면 다행이고 받으면 너무 빨리 되돌아오고 또 그런 되치기를 예측하지 못하니 내가 점수를 먹을 수 밖에 없다.
미리 정신이 예측하지 못하니 힘이 들고 무릎이 아프며 테니스앨보가 되지 않을 수가 없지.
이제부터라도 게임 전에 정신으로 무장하여 테니스 게임의 속성과 나와 상대의 특수성을 미리 생각하여 작전을 세우고, 게임에 임해서는 이런 모델의 바탕에 변화를 주면서 여유를 가지고 상대의 빈 곳을 공략해 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좀 더 "정신적인 테니스"를 해봐야겠다.
庖丁解牛 우화의 포정처럼 道를 좋아하고 기술을 넘어서서 자연을 이해하려는 (생활에서의 과학적 사고의) 노력을 좀 더 기울여서 보다 더 자연스럽고 물이 흐르는 듯한 (결을 따라 치는) 높은 수준의 테니스를 치고싶다.
'감상문: 영화와 책, 음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10.31: 가을에 읽은 책들-동양고전의 계절 (0) | 2012.10.31 |
---|---|
2012.10.14: 제9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발 3일째 (0) | 2012.10.16 |
2012.9.2: 여름에 읽은 책-무엇이 내인생을 만드는가 (0) | 2012.09.02 |
2012 여름: 항해를 전후해서 읽고 읽는 책들 (0) | 2012.08.20 |
2012.6: 최근에 읽은 책 - 음악의비밀, 수목장 (0) | 2012.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