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브루크에서 겨울 올림픽이 두번 열렸다고 하더니 과연 주변이 온통 스키장 투성이다.
그중에서 제일 높고 유명한 스튜바이에르 빙하산 (Stubaier Gletscher)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침 많이 먹어야 해!
쥬스 두잔, 커피 두잔.
시어리얼, 빵, 햄샌드위치, 요그르트.
그리고 스크램블드에그와 베이컨.
헥헥.
이거 다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가져간 몇년 전 보드복 바지의 허리단추가 영 채워지지가 않는다.
이걸 어쩌나.
그래도 간신히 편법을 써서 혁대를 바짝 조인 다음에 채우고, 근처 스키샆에 가서 보드와 부츠를 빌렸다.
그런데 바인딩의 넓이와 각도는 바뻐서 잘 조절을 못하고 대강 끼웠다.
빨리 근처의 스키장 버스 정유장으로 가서 수튜바이에르 빙하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타니 9시가 거의 됐고, 아직 비가 주룩주룩 온다.
약 40여분 지나 스키장에 도착했다.
리프트권이 아침에는 반일권이 없고, 오후에만 반일권이 있다고.
전일권을 샀지만, 아무래도 오후 일찍 끝내야 오늘 내로 스위스로 들어갈 수 있기에 간단히(!?) 몸만 플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속 곤돌라를 타면서 산을 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내가 스키장에서 아래를 보고 겁먹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시작도 전에 산을 올려다 보고 겁이 나기는 처음이다.
여기는 베이스가 해발 1750미터이고, 대부분의 코스는 해발 3200미터인 정상과 중간 스테이션인 해발 2300미터 사이에서 타게된다.
중간에서 베이스까지 내려오는 해발 1500미터 높이를 10키로미터 거리로 계속 내려오는 슬로프도 있다.
스키장에 오니 베이스는 약 영하 2도.
무지 길고 빠른 고속 곤돌라를 타고 중간 베이스로 올라가서 자동으로 다음칸으로 곤돌라에 탄 채로 다시 더 올라갔다.
한번에 한 10분 정도를 가네...
곤돌라에서 내려 맨 처음 밖에 나가서 바인딩을 묶으면서...
두번째 올라간 높은 지점에서.
내리니 안경에다 폴라썬글래스를 덮었는데도 잘 안보인다.
희고 눈이 막 불어대고.
정신이 없다.
여기는 거의 다 헬멧을 쓰고 고글을 했다.
부피가 커서 가방에서 뺀 헬멧이 아쉬웠다.
고글은 잊어먹었고.
잠시 앉아서 쉬면서.
그런데 이런 잠시가 무지 오래 됐다.
여기가 이러니 에베레스트같은 곳은 어떠랴?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몇년 전 구입한 고급 보드복과 엉덩이와 무릎 보호대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보드복이 눈보라에 쓰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별로 신경 안쓰고 샀었는데, 과연 이런 데서는 이런 옷이 좋구나를 절감한다.
다행히 춥거나 젖거나 바람이 새지는 않으니 힘이 없는 내 다리와 보이지 않는 장애(!)만 극복하면 될 듯.
아무래도 고지대여서 그런지 숨도 가쁘고 몇년만의 보딩이라 그런지 잘 안됀다.
게다가 눈보라가 엄청.
해가 안보인다.
가끔 보이는 해는 멀리서 안개 속에서 보이는 HID불빛처럼 약간 푸르스름한 색갈.
스키슬로프 지도와 각 슬로프의 개방 여부가 불로 표시된다.
현재 -11도에 바람은 시속 31키로.
그리고 눈보라.
이거 장난 아니다.
그저 우선 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약간 자면 그때 좀 내려가고.
중간에 앉아서 사진 찍는 척하면서 계속 쉬고 있다.
가파른 봉우리도 가끔 보이고, 물론 블랙 코스는 아니고 첫번은 가장 쉬운 녹색 코스인데도 이거 맘대로 안된다.
그저 빨리 돌고 눈을 질질 쓸어내리고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진 찍고 몇번 안돼서 이미 렌즈에 눈이 다 들어가서 물기가 차서 사진이 잘 안나오고 있다.
이렇게 헤메다가 중간 베이스로 내려가서 보니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슬로프 두개를 탔다.
그래서 실내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쉽다.
렌즈에 물이 들어간 게 증발하면서 이상하게 나온 사진.
그런데 이때는 나두 이상해서 뭐 정신이 없다.
물과 굴라쉬 숲.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나서 간신히 나가서 이번에는 레드코스로 가기로 작정.
오후가 되니 날이 많이 맑아졌다.
어떤 경우는 눈보라 때문에 잘 안보여서 대강 두세번 같은 장소를 각도를 변경해서 찍었다.
나만 이렇지 다들 쏜살같이 내려간다.
내가 이렇게 못 타지는 않았는데...
하여튼 힘들고 정신이 없다.
약간은 고산증세로 콜로라도의 윈터파크에 (Winter Park: 정상 3900미터?) 갔을 때 느끼던 힘이 없는 것처럼 느끼던 것과 흡사하다.
두번 째는 레드코스로 다른 방향의 코스를 타며 내려온다.
저 아래에 중간 스테이션인지가 보인다.
지금은 좀 탈만 하구만...
한국에서는 슬로프가 짧아서 재미가 없더니만, 여긴 왜 이리 긴거야!
햐여튼 사고없이 맥이 빠져서 내려오고 있다.
내려오는 곤돌라에서.
휴~
여기는 재미삼아 여행 중 그냥 들리는 스키장이 아닌 것 같다.
열심히 훈련하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나서 한이 없이 신나게 탈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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