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오토바이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2) | 2015.11.10 13:26:17 조회:300 추천:2 |
작성 :관리자 |
여행기
나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오토바이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2) 여대생 홀로, 베트남 해안도로(2,200Km) 종단 여행
지난 호의 Prologue 불타는 듯한 날씨와 타는 듯한 목마름. 그 속에서 일주일 간의 베트남 분노의 질주에 대한 글이다. 대장정을 마친 나는 샤워를 하고 눈에 보이는 티셔츠를 주어 입고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온갖 감정이 몰려오면서 이 순간이 혹시 내가 평생을 기다려 온 순간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절뚝거리며 나가서 사 온 음료수를 종류별로 한 모금씩 마시며 나는 그 순간을기록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나짱으로 다시 뜨거운 도로를 내달릴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밥을 느릿느릿 씹었다. 기름이 떨어진 채 사막에 고립될 것이라는 공포도 끝났고, 꼬마가 만들어 준 식사와 에너지 드링크까지 거하게 먹고 나니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출발 한 뒤로 이제껏 쉴 틈 없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졌지만, ‘원래 이런 식인 인생을 이제서야 난 배우고 있는 거다’ 라며 그럭저럭 미소 지어 넘겼다. 그리고 그 날 더 이상 웃지 못할 일이 나짱 근처에서 벌어졌다. 싸구려 오토바이로 혼자 여행을 하고 있기에 해가 진 뒤나 비가 올 때, 그리고 경사가 심한 곳은 피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달랏의 풍경이 아른거렸지만 안개 낀 산길을 구불구불 타는 대신 안전하게 계속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대신 나짱에 조식이 제공되고 따뜻한 물이 나오며 잘 정돈 된 개인 침대가 있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미리 예약 해 두었다. 쉬지 않고 달렸기에 이대로라면 해가 지기 전 무사히 나짱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마도 그 날의 골치는 무이네의 사막에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온 몸에 뒤덮인 모래를 씻어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과일을 사다가 먹으며 오늘 저녁엔 편안히 책을 읽다가 일찍 잠들 생각이었다.
끔찍한 오토바이 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 나짱 근처 소도시의 시내에서 나는 갓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몇 대의 오토바이가 간격을 두고 나란히 달리던 중, 앞서 가던 오토바이가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내 방향으로 갑작스럽게 우회전을 했다. 그다지 빠른 속도가 아니었으며 완전히 얼굴을 덮는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던 덕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글을 써보지만 어쨌든 나는 멈추지 못하고 부딪혔고, 내 오토바이 앞 부분은 완전히 부서졌다. 즉시 끔찍한 고통과 공포가 몰려왔다. 워낙 겁이 많아서였을까 잠시 사라진 기억 뒤에 나는 누군가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얹혀진 채로 동네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코와 입 어딘가 그리고 왼 쪽 양말 위로 피가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내겐 아무런 짐이 없었고 벌써 두 군데 병원에서 나를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슬프고 불쌍하게 울었고, 다행히 옆 동네 보건소에서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눈물 반, 피와 땀 반을 섞어 쏟으면서 침대에 고분고분 누웠다. 인중의 상처를 꼬매고 대충 소독도 하고 왼 발에 깁스도 했다.
이대로 지상에서 증발하고 싶었다 공포와 엄살 속에서 치료가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분의 거즈를 쥐어 준 간호사는 내게 이제 가도 좋다고 했다. 난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맥북과 카메라가 든 가방과 오토바이는 통째로 사라졌으며, 난 하노이까지 가야 한다고. 더듬대며 내 짐과 탈것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니 수간호사는 귀찮은 듯 다 버렸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부족한 베트남어 탓이었을까, 다친 입으로 올바른 발음이 나오지 않아서였을까. 한 시간쯤 우왕좌왕 보건소 앞을 헤맸다. 해는 졌고 보건소의 셔터가 내려간다. 급하게 전화를 빌려 하노이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보건소 경비 아저씨와 친구는 한참이나 통화를 했고 나는 애가 탔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현지인 보호자가 있거나, 예약된 호텔에서 직접 픽업을 와야 경찰서에서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더니 내 인생 여기까지구나’ 문 닫은 보건소 앞에 앉아서 먼지 섞인 땀만 삐질삐질 흘리며 난 초라하게 울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 뒤, 하노이의 친구가 나짱 근처의 삼촌에게 연락을 해 준 덕에 경찰서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여전히 난 아무런 상황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대로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고된 여정이 끝날 수만 있기를 바랬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에어컨이 틀어진 영화관에서 팝콘을 버석대고 깔깔대며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다. 경찰서에 가서 신원 확인 후, 가방을 돌려 받았다. 나와 부딪혔던 아주머니가 뒤이어 들어 오셨다. 한 명의 목격자까지 셋은 오토바이 모형을 가지고 경황을 설명했다. 베트남 공안은 정말 친절했다. 마실 물을 주셨고, 영어 통역도 붙여주었으며 운전면허와 여권을 확인 한 뒤, 내게 과실이 없는 듯 하니 어떤 보상을 바라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오토바이 수리를 내일 아침까지 해 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고 분실된 짐이 없는지 확인 뒤, 경찰서 주변의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더러운 담요 그러나 숭고했던 그 날 밤 힘겹게 계단을 올라 꺼져가는 침대에 앉았다. 문득 예약해 둔 (개인침대와 조식이 제공되는) 호스텔을 날려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 어떻게든 오늘을 마무리 짓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처음으로 본 거울 속에는 입술을 비롯해 얼굴이 퉁퉁 붓고 꼬질꼬질 때가 묻은 누군가가 서 있었다. 심지어 발등의 깁스를 뚫고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내내 기다리던 그 날의 샤워는 그렇게 눈물샤워로 끝을 맺었다. 하노이에서 걱정하고 있을 지인들에게 일이 잘 풀렸다고 연락을 했다. 다들 오토바이를 팔고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로 올라오라고 했고,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내일 아침에 몸이 많이 아프다면 한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인가도 고민했다. 일단 자려고 누웠는데 사고 장면이 스멀스멀. ‘부실한 헬멧을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얼굴이 다 박살났겠지? 속도가 붙어있던 상태였다면? 시체를 비행기로 운반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던데, 그냥 베트남에 난 묻히게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와중에 긴장이 풀리자 배가 고팠다. 잠을 자기엔 틀린 것 같아 가져온 책을 꺼냈다. 하노이 도서관에서 빌렸던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대충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스무살에 작가는 아프리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캐나다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배에서 일을 한 돈으로 차를 사서 사하라를 건너는 내용이다. 책에 완전히 몰입되어 작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목표에 거의 이르렀을 때,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최후의 순간에 더욱 분발하면서 마침내 목표를 성취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역경이란 무엇인가? 역경은 당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는 손님이다. 당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를 진실되게 알려주고 당신을 더 나은 존재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험은 당신에게 끝없는 역경과 어려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시간은 당신의 진정한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험의 시간’이며 모두가 당신을 지켜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하필 지금 읽게 된 건 운명이 아닐까? 작은 여관 방에서 털털거리는 에어컨 바람 밑에 싸구려 담요를 덮은 주제에 조금 경건해졌다.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켜다 비행기 예매를 취소했고, 애써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깁스하고 밤새 누구한테 얻어맞은 듯 더 부어 오른 얼굴을 한 채로 수리된 오토바이를 받아 나는 다시 달렸다. 사고가 나면서 아끼던 손목시계는 끈이 찢어졌고, 핸드폰은 박살 났다. 드디어 나는 정말 ‘여긴 어디고, 대체 몇 시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헬멧에 남은 스크래치를 보며 ‘와, 이게 내 두개골이었다면’ 오버를 떨었고, 덜컹거리는 길을 지날 때 마다 욱신거리는 광대뼈에 욕이 절로 나왔다. 입술이 붓고 입 속이 까져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너무 배가 고파 구멍가게에 들렀다. 말도 잘 못하고 밴드와 붕대투성이인 내가 무서우셨는지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가게 밖으로 내쫓았다.
밀고 – 당기기 핸드폰이 없기에 지도가 없는 것도, 내 위치를 친구들에게 알릴 수 없는 것도, 또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오롯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이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낮엔 40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갔고, 그럴 때마다 벌겋게 익어가는 손등을 보며 ‘내가 정말 미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마다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진 해안도로가 펼쳐지거나 산을 깎아 만든 도로가 나타나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가며 나를 달랬다. 레드불을 사 마실 때나 주유를 할 때 짧게 대화하는 동안, 직원이“너 진짜 멋있다. 여행 잘 하길 바랄게” 라며 건네주는 말은 뜨거움을 식히고도 남았다. 인생처럼, 내 짧은 여행도 밀당의 연속이자 반복이었다. 그 날 밤은 퀴년에서 머물기로 했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길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나서 나는 달리던 도로 옆 “Anh Dao’s Hostel”에 찾아 들어갔다. 방을 배정받고 오토바이를 맡겨두고 시장에 가서 죽과 우유를 사 들고 들어왔다. 몇 분 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열어준 문 뒤에서 주인 아저씨는 깨끗한 물, 그릇과 수저 그리고 빨간약과 붕대를 들고 서 계셨다. 내 얼굴을 보고 놀라실까봐 나는 급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물건을 받으며 고맙다고 얘기했다. 아저씨는 “다쳤니? 얼굴을 그렇게 가리지 않아도 돼. 예뻐” 라며 나를 살짝 안아주셨다. 끝없는 밀당에 나는 혹시 몰래카메라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아저씨의 친절과 응원에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아저씨가 좀 오래 안고 계시더니 손이 밑으로 내려가려 하기 전 까지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호이안의 숙소 구하기 숙소가 낡아 좀 으스스했지만, 난 그럭저럭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드디어 오늘은 내 최애도시 호이안에 가는 날. 다낭과 호이안 사이에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휴일이라 관광객이 많은 것 같았다.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스무 곳 넘게 돌아다니며 물어보는 숙소마다 전혀 그 어떤 방도, 침대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어제 밤 아고다에서 검색했을 때, 예약 가능한 숙소가 없길래 인터넷 상태가 나쁜 줄만 알았었다. 이 날은 세계 합창대회가 호이안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첫 날이었다. 정말로 모-든 숙소와 홈스테이가 진작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심지어 다낭에도 남은 방이 확인되지 않아 두 시간쯤 더 달려 후에(Hue)에 짐을 풀어야 될 상황이었다. 호이안은 내가 꼭 다시 보고 싶었으며, 밤이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10m도 더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바지와 속옷이 그냥 몸에 붙어버린 것 같았고 깁스도 덥고 아니, 그냥 너무 더웠다. 대체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일단 카페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망고 쥬스와 수박 쥬스 그리고 맥주를 동시에 주문했다. 허겁지겁 마시고, 손도 씻고 해가 지기 전 떠나야 할 것 같아 계산을 했다. 내내 기분 좋아 보이던 주인 아저씨는 “잘 가, 저녁 먹으러 또 와” 라며 인사해주셨다. 매우 약이 올라서 “저 방 없어서 저녁에 못 와요. 지금 후에까지 이걸 타고 가야 된다구요” 라고 심술 내며 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이 왜 없어 우리집 방 남았어" 하시는 사장님. 몇 시간을 구석구석 돌며 나를 자책 했었는데… 원래는 숙소가 아니지만, 행사 기간에는 방으로 손님들에게 빌려주기도 한다는 사장님. 그 덕에 조금 비싼 가격이었지만 (25만동) 기적처럼 난 그 날 밤을 보낼 소중한 장소를 얻었다. 가방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몸을 씻고 상처를 치료한 뒤, 잠시 침대에 누워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진 뒤, 설레는 마음으로 호이안의 밤을 맞으러 나섰다. 인생을 닮아 더 서럽고 기쁜 여행이 계속 되고 있었다. ( → 다음 호로 계속 이어집니다) /조서형 (Blog.naver.com/spongewow)
한인 소식지 11월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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