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오토바이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3) | 2015.12.07 15:16:46 조회:250 추천:2 |
작성 :관리자 |
나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오토바이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3) 여대생 홀로, 베트남 해안도로(2,200Km) 종단 여행
일단 카페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망고 쥬스와 수박 쥬스 그리고 맥주를 동시에 주문했다. 허겁지겁 마시고, 손도 씻고 해가 지기 전 떠나야 할 것 같아 계산을 했다. 내내 기분 좋아보이던 주인 아저씨는 “잘가, 저녁 먹으러 또 와” 라며 인사해주셨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약이 오른 나는 “저 방 없어서 저녁에 못 와요. 지금 후에까지 이걸 타고 가야된다구요” 라고 심술내며 답했다. "방이 왜 없어? 우리 집, 방 남았어!” 시종일관 밝은 얼굴의 사장님은 자신이 사는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방을 보여주셨다. 정말 밀고 당기기의 끝장판을 보여주는구나. 오늘 밤을 보낼 곳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방은 생각보다도 더 넓었고 화장실과 욕실까지 방 안에 딸려 있었다. 너무 지쳐서 왠만한 바가지는 기꺼이 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25만동을 제시하셨고 어쩌다보니 23만동까지 흥정을 했다. 밖은 해가 어슴프레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만 원 남짓한 방에 자리를 잡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먼지 덮인 가방을 닦고, 뒤섞인 짐을 정리했다. 샤워를 하고 가진 것 중 비교적 깨끗한 옷을 꺼내어 갈아입었다. 밴드를 새로 붙이고 나니 드디어 설레는 호이안의 밤을 즐길 채비가 다 되었다.
그 날 밤, 호이안
명실상부한 호이안의 밤이었다. 두 달 전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유명한 음식점은 줄을 서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었고 사진 찍기 좋은 곳 마다 관광객이 북적였다. 몇 달 전, 가만히 머물며 돌아보았던 마을이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천천히 추억을 되새기며 또박또박 걸었다. 말하기에 쑥쓰럽고 어이가 없지만, 나는 사실 걷다가 조금 울었다. 그 날 밤, 호이안의 길을 가다 나를 본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다친 얼굴에 미라처럼 동여 맨 다리까지 험상궂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애써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으어어-“ 소리내며 걸어다녔으니까. 어쨌든 베트남에 여행 온 사람이라면 꼭 사파와 호이안을 가야한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하고 싶다. 아름답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쁘게 보였고, 모두의 손을 잡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기고 싶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기념사진도 찍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누가 물어본다면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극한의 기쁨을 누렸다. 이 작은 도시는 해가 지면 가게마다 켜지는 작은 등이 장관이다. 길가에는 얄궂은 기념품들과 간식거리를 파는 좌판이 깔린다. 짐이 많지 않다면 호이안의 전등을 하나 사는 것도 좋다. 두고두고 호이안의 밤을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기념품을 살 때, 달러도 받는 곳이 많은데 왠만하면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한 가격일 경우가 많으니 유의하는 것이 좋다. 나는 오토바이 여행자라 사고 싶은 것을 꼭 참았다. 구경하다 민물 게 빵을 사 먹었다. 급하게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기기만 한 빵이었음에도 꿀맛이었다.
한계에 다다른 오토바이 다음 날 아침, 주인아저씨가 핀에 내려주시는 진한 베트남식 커피를 감사히 마시고 호이안을 떠났다. 아니, 채 호이안을 벗어나기도 전, 오토바이 시동이 털털 소리를 내다가 자꾸만 꺼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산 길을 넘어 DMZ까지 갈 예정이었으므로 미리 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도록 아침 일찍 출발한 게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다낭으로 나가는 길에 위치한 수리점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열 한시까지 반나절의 수리 시간이 걸렸다. 어제 열 시간이 넘도록 제대로 쉬어주지 않고 운전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바로 옆 가게에서 책을 읽으며 1만동 짜리 중부지방 음식인 미꽝을 여유롭게 먹었다. 그러고서도 남는 시간에는 수첩에 그림을 그리며 낡은 부품이 교체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섯 아이의 아침밥을 먹이느라 진땀을 빼던 오토바이 집 아주머니는 내 상처를 여러 번 살펴보고 물어보시더니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다 주셨다. 처음 보는 한국 여자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해주는 마음이 감사했다. 두 알씩 먹는 강력한 항생제를 먹고 남은 여정 내내 갈증과 속쓰림에 시달렸지만, 엄마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70만동의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으나 별 탈 없이 다음 목적지까지 가게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구름 고개를 넘어 다낭에서 후에로 넘어가는 길에는 오토바이 여행자들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우는 하이번 고개가 있다. 하이는 베트남어로 바다, 번은 구름을 뜻한다고 한다. 하이번 고개는 이름 그대로 바다와 구름의 고개가 되는 것이다. 세계 10대 절경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곳은 바다를 끼고 솟은 높은 지대를 따라 구름을 뚫고 달릴 수 있는 곳이다.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던 길이라 나는 새삼 핸드폰이 고장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표지판만 보고 따라가다 바나힐을 오르고 다낭 바닥을 헤맨 뒤에야 하이번 고개에 도착했다. 성취감과 기대감에 차 기분 좋게 오르는 도중 푸르륵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 시동이 꺼졌다. 고통과 기쁨이 적어도 비슷한 비율로 와야 되는 거 아닌가. 내 여행의 시련과 고난에 비하면 행복의 순간은 가뭄에 싹 나듯 했다. 몇 초 전까지만해도 흥얼거리던 나는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화를 냈다. 아니 왜 하필 또 산에서 오토바이가 고장이 난담. 끌고 내려가기엔 무섭고 올라가기엔 무겁고 대체 뭘 위한 고생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건가.
What’s wrong? “헤이! 왓츠롱? 모토바이크 브로큰?” 유창한 영어의 주인공은 어디선가 나타난 베트남 아주머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아침 드라마 대본이라고 착각할 만큼의 밀당의 연속이었다. 하이번 고개의 꼭대기에서 찻집을 하시는 아주머니는 오토바이를 카페까지 끌고 가 주시고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주셨다. 가게에서 음료를 사 마사고 나와 같은 여정을 자전거로 소화 중인 파리 남자와 각자의 고된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엔진오일을 30만동에 충전한 뒤, 하이번 고개를 감상할 틈도 없이 다시 내달렸다. 오토바이 수리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훼(Hue)쯤 왔을 때는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고민하다 왠지 욕심이 나서 동하까지 더 가기로 했다. 훼를 지나치자마자 갑작스레 비가 오고 천둥이 쳤다. 동시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도로에는 안내등이 없었기에 뒤에서 달려오는 전조등에 의지하여 천천히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밤 눈이 어두운 나는 공포감에 어깨가 귓 볼까지 치켜 올라갔다. 어쩌다 버스나 대형 화물차가 바로 옆을 경적을 울리며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공포의 비명을 꽥! 질렀다. 그 흔하던 숙소는 어느새 다 숨어버려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여행책자에 나온 저가 호텔은 얼마 전 문을 닫았다고 했다. 다시 고속도로에 내쳐졌고 정말 오랫만에 추위를 느꼈다. ‘으으으어어어 엄마 저를 제발 지켜주세요 엉어어엉’ 소리내어 공포에 질려있다가도 눈물이 고이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니 천천히 울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수록 주변 차 들은 나를 향해 더 큰 소리로 경적을 울렸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한 존재라니, 혼자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일정을 시작한 뒤로 그냥 무난하게 넘어가는 하루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게다가 비를 맞아서인지 오늘만 두 번 수리한 오토바이도 자꾸 시동이 꺼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숙소를 겨우겨우 구했다. 침대 위엔 몇 사람이나 덮었을지 생각하면 조금 꺼림찍한 담요가 있는대로 보풀을 일으키며 머릿카락과 엉겨붙어 있었고 불은 어두침침했다. 화물차가 지나갈 때마다 방 전체가 함께 흔들렸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었다. 여권을 맡기고 있는대로 방 문을 모두 잠갔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앨범 수록곡들을 들으며 그 날 밤을 꾸역꾸역 넘겼다. 해가 뜨자마자 어제의 미꽝이 마지막 식사였던 나는 다시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정오의 태양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잠을 자는 일은 아껴두었다가 하노이에 가서 해도 충분했다. 죽을 좀 먹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한 시간 남짓 달렸다. Chao Vit(오리죽) 간판 앞에 용감하게 오토바이를 세웠다. 조금 비쌀 수 있지만 몸 보신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다. 주문하자 오리가 반 마리쯤 들어갔을 듯한 엄청난 양이 나왔다. 뜨거운 기름 국물과 곡기를 들이키자 나는 빠른 속도로 몸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만 원쯤 낼 생각이었는데 이 대단한 오리죽은 단 돈 2000원, 4만동. 와이파이까지 제공되어 며칠 간 연락을 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완벽하게 좋아진 기분으로 타이머를 맞춰두고 기념 사진을 남겼다. 사진에서처럼 베트남의 대부분 길은 차가 달리는 국도 바로 옆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즉 국도를 달리는 것은 대형 화물차와 슬리핑버스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농업용 차도 있다는 것. 아, 또 식구들이 서넛정도 가뿐히 올라탄 오토바이까지.
단단한 작은 딸내미 빈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여정, 정말 하노이로 가는 날. 피곤과 더위를 피해 빙수집에 내렸다. 강판에 얼음을 갈아서 내어주는 Che는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다. 책을 꺼내 읽다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올라가는 중이라고, 그 중에 흉터가 남았다는 얘기까지 했다. 사전을 급하게 찾으시던 사장님은 “단단한 작은 딸내미”라며 하노이까지는 아직도 멀었음을 알려주셨다. 남은 거리를 떠나서 무겁고 진중하고 튼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에너지 드링크를 연신 마셔대며 마지막 힘을 냈다. 도로에서 엔진이 꺼져서 고꾸라졌지만 주변에 대형차가 없어서 다행이었고 속도가 높지 않아 또 다행이었다.
'문제들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 안에서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문제를 맞이하는 자세뿐이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실망하고 좌절할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포기해버린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편안함을 찾아서 돌아간다. 도전도 없고 성취도 없는 세계로!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위기를 '시험'이라고 생각하자. 미래에 성공한 사람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것을 가르쳐주는 '시험'이라 생각하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미리 다짐하라. 장애물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고, 그 장애물을 뛰어넘으려 노력하라. 성공할 때까지 당신의 길을 끈기있게 계속 걷겠다고 결심하라'
이 글을 읽고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 속엔 선물이 감추어져 있을꺼라 생각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렇게까지 끊임없이 시련이 올 줄은 몰랐다. 고지가 코 앞이지만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다. 내가 포기하고 싶을까봐 두려웠다. 멍하게 잠깐을 누워있다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악 문 이로 다시 달렸다. 고마웠고 무서웠다. 덜덜떨며 40km로 느릿느릿 기어갔다 드디어, 닌빈에 도착했다. 얼음물을 사러 갔다가 응원의 망고를 얻어먹고 한 시간을 쉬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한 번 오토바이 타고 왔다 갔다고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그러나 덜 힘들진 않았다. 역시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고 나는 하노이에 도착했다. 하노이에 도착해서 이틀을 가만히 쉬었다. 베트남어 숙제도 미뤄두고 입에 붓기가 가라앉아 맛있는 것도 먹었다. 꿈에 그리던 ‘에어컨 바람 밑에서 노트북으로 서핑’도 했다. 그리고 놀랄만큼 빠른 회복. 울버린이다. 까맣게 탄 손을 자랑하며 맥북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후기 길기만 한 앞뒤 없는 글이지만, 나는 해냈다고 한다. 이 글을 빌어 걱정해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조서형 객원기자 (Blog.naver.com/spongewow)
한인소식지 12월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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