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지난 달 말에 배달받고 즉시 읽기 시작했다가 일부 남겨뒀던 암보 연주의 장점과 방법을 설명한 작은 책을 다 읽었다.
지금은 새벽 5시, 한시간여 전부터 읽었다.
왜?
어제 점심 때 베트남을 방문한 블벗들과 호지민시에서 비행기로 Nha Trang (냐짱, 나트랑)에 와서 예약했던 Mia Resort의 페밀리스위트에 체크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에 그전날의 맥주로 인한 소변이 마려워서 일어났다가 밖에 나갔다가 피곤한 느낌도 거의 없고, 절벽 아래에서 부딪치는 허연 새벽의 고요 속에서의 커다란 파도소리의 바다를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들어와서도 잠이 오지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외웠다고 생각해서 입으로 불러봤던 Besame Mucho의 가사를 내가 제대로 잘 기억해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에 (사실 가사는 베끼기만 했지, 거의 노력이 없었으니 당연했지만) 자기 전에 위의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 책에서 읽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후에는 그 뒷 부분들도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중요하개 생각되는 부분들을 다시 밑줄을 그었다.
그 중 일부.
Appendix 중에서:
... I wanted to communicate better with my audience.
Performing is about communication, and having my eyes glued to the music is not a good way to communicate.
(... 나는 청중과 보다 잘 소통하고 싶었다.
(연주회의) 연주는 소통 행위이고, 악보에 내 눈을 고정하고 있는 상황은 소통의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내 경우: 위의 글에서 나같은 연주회를 하는 전문연주가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순수하게 자신만을 위해서 음악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츄어 취미생활 수준의 기악연주가에게 이런 청중과의 소통의 목적인 연주회가 당연히 주목적이 아닌 경우에도 위의 말이 의미가 가지는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식연주회가 아닌 한 사람 앞이나 같은 동호회 사람들 앞에서의 연습연주일지라도, 자기만의 연주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의 연주인 한에는 위에서 언급된 소통은 여전히 dominant 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
나의 경우에도 같은 구청 월례발표회에서 악보없이 연주 발표하는 두사람이 왜 부러웠을까?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show-off만을 내가 부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과연 그들의 무엇을 내가 부러워했는가?
그들의 연주가 일부 틀리는 부정확한 박자등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보는 경직된 자세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몸의 표현력과 태도 등에서 경과되는 자연스러운 소통력(?)에 부러움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된다.
Conclusion 중에서:
It is not about speed; it is about quality.
(이것은 "속도/효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질"을 위해서 이다.)
If passion is defined by quantity of work, I certainly have a lot of passion.
This, however, is not about quantity.
It is about "quality", and this book has influenced the quality of my practice time.
I went from knowing (and writing about) what is good for me to consistently implementing what is good for me.
(만약 정열이 하는 일의 양으로 결정된다면, 나는 정열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 (음악?!)은 양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음악은 "질"에 관한 것이고, 이 책은 내가 연습시간을 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다.
나는 무엇이 나에게 좋은 것인가를 아는 (그리고 기록하는) 데에서 부터 나에게 좋은 것을 일관되게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 I "knew" deep inside that I could do better.
Is it better to play from memory?
(나는 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악보를 보지않고 외워서 연주를 하는 것이 더 나을까?)
If you have passion for what you do, you will always refine that activity.
Passion has forced me to work even harder at my performing.
If you are passionate about what you do as a musician, you must always work harder.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정열이 있다면, 당신은 항상 그 행위를 개선할 것이다.
정열은 내가 연주를 좀 더 잘 하도록 준비하게 만들었다.
만약 당신이 음악가로서 당신이 하는 일에 정열이 있다면, 당신은 항상 더 열심히 일할/연습할 것이다.)
"What is your passion, and what are you doing about it?"
("당신의 정열은 무엇이냐, 그리고 그 정열을 위해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내 경우: 이글을 쓰는 중에 다른 이들이 일부 일어나 수영장 앞에 나와서 같이 베트남 바다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책 읽은 것을 설명하고 내 경우 현재까지의 공학자적인 효율성 위주의 이상과 현실의 타협적인 삶에서부터 퇴직 후에 내가 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노후에는 영혼을 탐색한다"는 전통적인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 비슷하게 앞으로는 철학자적인 태도의 삶으로의 변환과 "The Zen of Motorcycle Maintenance"에서와 이책에서의 공통점인 "quality"와 질에 추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
결국, 이 작은 책을 잘 읽으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악보없이 연주하는 길로의 첫발을 디딜 수 있게 됐고, 나아가 원래부터 원했지만 최근에 퇴직과 해외생활, 집짓기 등에 잊어버렸던 내가 원하는 인생의 방식에 대해 다시 기억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클래씩 전문연주가로서 음악을 악보없이 외워서 연주해야 하는 부담을 피할 수도 있으면서도 본인이 외우는 노력과 결정을 하면서 결국 자신의 삶인 음악의 길이 "양"이 아닌 "질"에 대한 추구하는 사실을 깨닫고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내가 십년여 전에 당시 재한 인도대사에게서 인상깊게 들은 얘기로 전통적인 (아마도 상류계급) 인도인들의 삶은 대체로 (1) 나서부터 20세 정도까지의 보호받고 교육받는 초기와 (2) 20세 정도부터 40세정도까지 사회에 일을 하면서 이바지/공헌하는 중기, 그리고 (3) 40세부터 60세 정도까지의 영혼을 탐색하는 말기로 나뉘어진다.
물론, 이런 초기, 중기, 말기는 현재 우리 사회로 보면 0-25/30세, 25/30-60/65세, 그리고 60/65-90세 정도로 각 기간을 보다 길게 잡는 것이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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