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영화와 책, 음악회,..

2013. 11. 20: 영화, All Is Lost

cool2848 2013. 11. 21. 11:52




두어달 전에 요트카페에서 이 영화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글을 보고 꼭 보러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최근 영화를 보지않아 모르고 있다가 한 블로거의 댓글에서 전날 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듣고 어제 저녁 늦게 아주 가끔씩 가는 광화문 씨네큐브에 보러갔다.


요트 타는 사람들, 특히 장거리 항해를 생각해본 사람에게는, 나오는 장면들이 전혀 새롭지않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는 영화이었다.

Life of Pi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바닷속에서 해면의 구명정이 보이면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약간은 환상적인) 장면 들은 개인적으로는 쓸데없다고 생각했고 화물선이 지나가면서 구명정이 그 물결에 흔들릴 때는 너무 물결의 크기가 작았다고 생각했고, 쎈 바람에 배가 달리기 시작할 때는 먼바다의 백파가 바람에 물방울이 거칠게 튀지않고 화면이 너무 깨끗하다고 느껴졌고, 마스트가 부러졌을 때는 연결된 사이드스테이가 편리하게 다 끊겨 없어진 점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위의 환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맨 마지막의 장면이 무리없이 수용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장면들은 아주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화였다.


계속 재수가 없이 운이 나쁜 경우이겠지만, 혼자서 상당히 오랜 경험을 갖은 쿠루져가 항해를 하더라도 이정도의 준비 이상 모든 경우에 준비가 된 항해란 거의 할 수가 없고 있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였다.

내 배도 비슷한 정도의 크기에 좀 더 예쁘고 좀 더 준비는 잘 되있다고 생각되지만, 막상 영화 속의 상황에 처한다면 크게 다르지 않게 대처할 것이고 (사실 구멍난 FRP를 때우는 장면을 보고는 좀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음.^^), 아마도 영화 속에서 화물선들이 구명정을 발견할 확률은 영화 속에서 처럼 매우 매우 낮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최근에는 비싸지 않은 (조난 시 자동이나 수동으로 최소한 24시간이나 48시간 이상 지구상 어데에 있더라도 인공위성에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파견된 구조대가 접근할 수 있도록 근거리 무선과 백색 구조등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Epirb이나 PLB의 구매와 (약 US$300-$1,000) 유지가 장거리 항해 요트들에서는 일상화되어, 구조대가 접근하지 어려운 아주 험한 날씨가 계속되지 않는 한, 요즘은 이런 장비와 경험이 있는 장거리 항해자가 이렇게 구조되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매우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거리 항해 요트처럼 이런 장비가 없다면, 다른 점들에서 많이 준비된 영화 속의 요트와 요트인이라도 이 영화와 같은 상황은 거의 확실히 (무지 높은 확률을 가지고) 벌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나에게 문제는, 아니 좀 더 잘 표현하면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점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열심히 잘 해도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장거리 항해를 왜 하느냐는 것이다.

혼자서 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된다: 작은 공간에서 24시간 같이 살아야 하는 요트는 아주 극단적일 수 있는 상황이고, 이런 곳과 이런 극한상황은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항해를 하는 (쿠루징과 꼭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대부분 같이 사용할 수 있겠는데) 쿠루져(cruiser) 혹은 요티(yachtie)의 문화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이 영화의 직접적인 범위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만약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분이 내가 위에 쓴 글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영화는 정말 볼만한 알고 싶어 할만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서 나름 잘 준비되었고 주어진 악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의 생의 단면이다.

깊이 생각할 점들을 해답없이 던져주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4.8/5.0!

요트타는 사람이라면, 어떤 요트 관련 영화보다도 꼭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