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래서 나와 같이 여행하던 사람들이 놀랐던 일이 있었다.
우리는 칠레의 푸에르또 몬뜨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미대륙 최남단의 항구도시인 푼따 아레나스로 갔다.
여기서 시내로 들어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는 버스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있는 푼또 나탈레스로 가는 중이었다.
즉 우리에게 이 도시는 자체로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 그냥 몇시간 지나치는 도시였다.
그렇지만 여기가 바로 남미대륙 땅덩어리의 최남단으로 오백수십년전 마젤란이 선단을 이끌고 세계일주 항해에서 남미대륙과 남극대륙 사이의 위험한 케이프 혼을 통해서 태평양으로 나가지 않고 남미대륙과 그 남단의 섬인 티에라 델 푸에고 사이의 비교적 안전한 마젤란 해협으로 건너갔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항해를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파도와 바람, 추위등으로 매우 위험한 케이프 혼을 피하여 남미대륙의 남단을 건너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곳이기에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을 하는 무렵에 한국에서 최초로 돛단배를 가지고 혼자서 세계일주 항해를 하고 있는 윤태근 선장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관심은 온통 이곳 마젤란해협에 있었다.
공항을 나오면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마젤란 해협.
자세히 보면 물결이 잔잔한 것 같지만, 바람에 물색이 잔물결들로 어두운 것을 알 수가 있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좀 더 사람 사는 곳 같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거친 바람과 추위 속에서도 나름 평화로운.
이곳에는 마젤란의 항해 시의 배를 복제해놨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옛날 이런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했구나.
시간이 없고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미리 몰라 미처 볼 시간도 없었다.
시내로 들어가서도 항상 한쪽으로 부는 쎈 바람으로 모든 나무들이 한쪽으로 기울어 큰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생긴 나무들도 저렇게 생긴 나무들도 한결같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작은 시내에 들어가서 일행들이 한식당이 있다고 들었다고 찾아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거기서 만난 사장이다.
다른 이들과 한동안 얘기하더니 반시간여 뒤늦게 들어선 나에게 동갑이지만 생일이 거의 일년 빠르니 자기가 형님이라는 둥 얘기했는데.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아무래도 어디에서 만난 사이 같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얘기를 계속하려는데, 소리를 지른다.
알고 보니 1971년에 고등학교 졸업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고등학교 동기였다.
같은 반을 한 적은 없어서 나는 아직도 잘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3학년 때 옆반이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사업을 말아먹고(?) 이곳에 온지 이년반인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해산물들을 계절에 따라 한국에 수입하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다른 계절에 할 일도 딱히 없고 하여 이 낯설고 물설은 바람이 쎈 땅끝마을에서 라면 가게를 하고 있었다.
이름은 윤호라고 하였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비해 이 친구 냄비도 큰 것이 없고, 가스불도 작은 것 두개라서 나는 제대로 라면을 대접받지 못하고 그냥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그래도 내를 만났다고 마시던 피씨스 술병을 내어 같이 마시고, 버스를 타러 급히 떠나야하는 나에게 가지고 있던 의도적으로 잘못 제조된 칠레주화를 선물로 주었다.
자세히 보면 칠레라고 쓴 글자의 L 대신에 I 를 써놓았다.
또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 뒷통수와 글자들 사이의 빈칸에 이 일을 저지른 동전 제조청의 직원 싸인이 있다.
물론 이 직원은 당장 파면됐다고 하는데, 그 정도만으로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 같아 이상했다.
이런 동전을 400개인가 4000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40여년만에 우연히 만난 후에 한시간여만에 떠나면서 남미대륙 남단의 땅끝마을에서 만난 인연과 다시 헤어졌다: 윤호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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