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노년생활

2010.3.10: 봄눈, 블로그 소고-III

cool2848 2010. 3. 10. 16:14

 

아침에 늦게 일어났더니 어제 늦게부터 내리던 눈이 많이 쌓였다.

사진은 오후 3시가 넘어서 찍었는데도 아직도 저리 반 녹은 상태로 쌓여있다.

 

 

어제 저녁에는 오랫만에 집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다.

한번 집에 와서 내가 돈을 준 적이 있는 사람인데, 암이 걸려서 창자가 다 배밖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저녁에 비가 조금씩 오는데 등이 젖어서 구부정한 자세가 불쌍했다.

좀 놀라웠던 것은 예전과 달리,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만원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집에 오는 거의 모든 구걸하는 사람들은 천원 정도를 기대하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오천원을 주면서도 왠지 미안한 느낌이었다.

 

요즘 에릭 와이너란 사람이 쓴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행복의 지도> 읽는 맛이 꽤 짭짤하다.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 밑줄을 그면서 읽고 있다.

여기서 제4장 카타르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나는 문득 내가 계속 블로그를 쓰는 두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집이 꼭 한 곳일 필요는 없고, 어떤 장소일 필요도 없지만 모든 집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두가지 있다.

첫째, 공동체 의식.

그 보다 더 중요한 두번째 요소는 역사. ..."

 

"공간과 시간,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 두 개의 차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리학자 투안이푸는 <시간과 장소>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풍경은 개인의 역사와 부족의 역사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

특정한 장소는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 준다."

 

"레베카 솔닛은 서정적인 책 <길을 잃어버리기 위한 현장안내서>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 범죄, 행복, 운명적인 경험이 이루어진 곳으로 되돌아갈 수는 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진 장소는 계속 남아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있으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사이버공간에 블로그라고 불리는 별장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는 댓글로 소통하는 블벗들과의 (1)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고 더 중요하다고 언급된 (2) (개인의) 역사도 사진과 함께 기록의 형태로 남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과거의 개인 역사의 기록물인 블로그는 그 개인에게 더불어 블벗들에게 그 개인의 사랑과 행복 같은 운명적인 경험이 이루어진 과거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로는 우리 부모들이 가지고 있던 색바랜 사진앨범보다 훨씬 생생한 색갈과 구체적인 마음 상태까지도 제공함으로써 보다 리얼한 과거의 재창조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보인다.

 

"어쨋든 좋은 삶,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라는 레이더 스크린이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쎌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행복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우주시민임을 느끼며, 우주가 보여주는 장관과 우주가 주는 기쁨을 흔쾌히 즐긴다.

그는 자신이 후세에 태여날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삶이라는 개울과 이처럼 심오하고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사회과학자들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 중 약 70%가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나 친구, 가족, 직장동료,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추정한다.

...

따라서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타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낄 확률이 많다는 것이고, 블로그처럼 개인의 성향이 싸이버적인 인격체를 이룰 때 그리고 그 블로그에 타인과의 댓글을 통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때 블로그를 쓰는 개인과 블벗들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아니면 기존에 비효율적이던 관계형성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가 있는 행복의 원천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인다.

 

이런 면에서 보면 블로거는 (1)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싸이버공간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감으로써 효율적인 행복의 원천을 기존의 삶에 더하거나 연장시킬 수가 있게 되어 타인과의 관계 증진을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확대함으로써 행복의 양과 질을 넓히고 깊게 할 수 있게 되었고,

(2) 나아가서 이런 기록들이 그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리얼한 과거회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시간차원에서 현재와 최근 시간에 한정되어 있던 즐거움의 양과 질을 대폭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비공개 블로그는 위에 묘사된 근본적인 타인과의 관계를 제약함으로써 공개 블로그보다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될 개연성이 보다 적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