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노년생활

09/12/31: 내 스쿠터 스토리...

cool2848 2009. 12. 31. 02:54

난 육칠년전까지는 스쿠터를 않탔다.

이런저런 "오도바이"들을 탔다.

듬직하게 생긴 은색 빛나는 효성-스즈키 GSE250 (1985년)부터 시작했다.

몇년 후에는 까만색의 늘씬하게 쭉뻗은 중고 스즈키 Intruder 750,

그리고는 미국 오토바이 잡지가 그리 칭찬했던 검정펄의 혼다 VFR750F (1992년).

다시 7년 후에는 나에게 대강 잘 맞음을 발견하게 된 빨간색의 혼다 CBR600-F4 (1999년).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자주 않타게 되서 팔고보니 얼마 후에는 다시 너무 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CBR600에서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다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던 빨간색의 정열적인 혼다 Fire Blade CBR954RR (2003년)을 사게 되었다.

 

이 현재도 소유하고 있는 마지막 혼다를 사기 전에 1980년중반부터 가끔 같이 오토바이를 타던 모래내혼다의 유사장 (잘 있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사게된 당시 새로 나온 대림의 델피노 스쿠터.

처음 타는 스쿠터인데, 2스트로크(행정) 100씨씨 엔진이라서 가속도 좋고 내몸 크기에도 잘 맞는 나름 예쁜 데가 있는 작은 스쿠터로 전조등이 어둡고 앞포크가 너무 작아 휘청되는 등의 몇가지 불만들도 있었지만, 이놈을 타고 나는 연희동 골목을 고알피엠으로 달리면서 스쿠터를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바퀴도 길에 잘 붙는 던롭 경기용 타이어로 바꿔주고, 좀 더 밝게 해보려고 전조등의 전구도 바꿔보고, 스파크 플러그도 백금플러그로 교체해보고, 앞브레이크 패드도 일제로 바꿔보고, 스파크 프러그 와이어도 좋다는 것으로 바꿔가면서 나름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불만들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면서 오래 타게 됐다.

 

중간에 50씨씨짜리인 효성의 수퍼캡 와 대림의 택트도 사서 잠깐씩 타봤지만 둘 다 전혀 내가 원하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2년반 전쯤에 이 스쿠터를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타고 다니다 사슬에 걸려 페어링이 대파되면서 부터 시작됐다.

장기간 작고 잘 나가는 스쿠터의 매력을 알게 된 후이기에 이제 큰 오토바이는 가끔이 아니면 잘 않타게 되었다.

그래서 5년을 나름 잘 키우면서 타던 델피노는 페어링을 교체한 후에 싸게 넘기고 다른 소형 스쿠터를 보러 갔다.

 

그러다 충동구매로 사온 것이 아마도 전조등이 환해서 좋아 사게 됐던 한달도 타지않은 거의 신품인 125씨씨 4행정의 중국산 하우즈-스즈키의 Rosie.

그런데 이것은 안장 밑에 내가 사용하는 풀페이스헬멧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여기에도 타이어도 바꾸고 했지만, 헬멧도 잘 않들어가는 트렁크의 불편함과 4행정 엔진의 무미한 가속력 때문에 결국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달을 더 못타고 팔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 굵은 타이어와 높은 포크 등 어프로드 풍의 스타일이 멋진 이쁜 노란색의 야마하 BW's100을 샀다.

그런데 2행정의 100씨씨인 이놈은 가속은 좋지만 최고속이 않 좋다.

시내에서 달리다 보면 택시가 나보다 더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타이어도 바꿔보고, 특히 스파크플러그와 와이어도 바꿔봤다.

여전히 최고속이 80키로 정도에서 더 못 나간다.

이거 위험하다.

바이크는 빨라야만 교통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

그래서 예뻐서 아쉬웠지만 팔았다.

 

그리고 나서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알게 된 같은 기러기아빠였던 퇴계로 오토바이 부품가게 사장이 추천하던 야마하 시그너스의 신형 뉴시그너스를 샀다..

신품을 사면서부터 대만산 돼지꼬리 머플러도 구입해서 달아주고.

과연 좋은 소형 스쿠터였다.

서스펜션도 소형 스쿠터로서 가속력도 스타일도 다 괜찮다.

나쁜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데 왠지 뭔가 5%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객관적으로 다 좋은데, 왠지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불현듯 팔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산 것이 대만 스즈키의 GSR-125.

How I loved this bike!

춘천에서 사서 춘천가도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서 내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잡아당기면 당기는 대로 잘 나가는 것 같았고 (춘천에서 서울은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인데다 이 스쿠터의 속도계는 꽤 오차가 심한편이었다), 잡으면 잡는대로 약간 늦지만 잘 섰다.

서울 외곽까지 오면서 거의 다른 차에 따라잡히지 않고 왔다.

나머지는 다 내가 따라마셨다.^^

서울 시내에서는 물론 경쟁도 않돼었다.

이쁘기는 어떻게 이렇게 잘 빠지고 예쁜지, 게다가 전조등도 밝고 안장밑 트렁크에는 풀페이스헬멧이 들어가고도 다른 것들을 좀 더 넣을 수도 있다.

 

이렇게 스쿠터를 즐기다 보니 내가 모르던 사이에 새롭게 큰 스쿠터들이 많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대만산 빅스쿠터인 Xciting 500을 사게 됐다.

그런데 타고 보니 누구를 태우고 여행을 다닌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에게는 이것은 크고 무겁고 그리 재빠르지도 못하다.

고속에서는 빠르고 묵직해서 타기에 좋지만, 앞 포크도 딱딱하고 안정감과 핸들링에 신뢰감이 안 생기고 특히 집 주변에서의 단거리 주행이나 시내에서의 (잘 하지는 않지만) 칼치기에는 영 불편했다.

게다가 짧은 나의 다리에는 너무 높고 넓은 안장이라서 저속과 집앞 언덕길에서의 주차 등의 상황에서 무거운 무게와 함께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팔고 다시 구한 것이 스포츠형 빅스쿠터인 야마하의 티맥스.

과연 이놈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날씬하고 잘 생기고 잘 서고 잘 나가고 서스펜션이 좋은 이놈도, 안타깝게도 내게는, 너무 안장이 높았다.

그리고 무거웠다.

아무리 좋아도 이것을 타고 동네 골목을 다니거나 집 주차장에 세우거나 시내 칼치기를 하는데는 불편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언덕길에서 무릎을 긁고 싶거나 시속 백키로를 3초내에 끊고 싶거나 자유로에서 250키로로 달리고 싶다면 나는 아직도 카본머플러와 조절식 발판과 핸들링 댐퍼와 새 브리지스톤 스포츠타이어로 튜닝한 내 빨간 애인 CBR954RR을 가지고 있었다.

Bye, TMax.

 

그러면서도 또 두대의 할리데비슨 스포츠터 883(C)을 샀다 팔았다.

늙으면 오래 타면, 오토바이를 알게되면 다 할리를 탄다는 이상한 전설에 넘어가 뭔가 좋으니까 그렇겠지 생각하고 일년 정도 몇번 타봤다.

그런데 아무리 타봐도 내게는 덜컹거리는 트럭의 맛이다.

엔진이 쎈가?

서스펜션이 좋은가?

브레이크가 좋은가?

내가 타는, 아니 타본, 어떤 바이크 보다도 좋은 성능이 없다.

나에게는 단지 두가지만이 마음에 들었다: 

만지면 다 솔리드한 쇠의 단단한 느낌이다; 엔진 배기음이 무겁고 불규칙한 게 미싱 소리같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

결국 이 바이크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 새로 나온 혼다의 DN-01을 타고 일주일간 전국투어를 하게됐다.

좋았다.

같이 탄 사람들도 우리나라 강산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같이 작은 사람에게 발바닦이 닿는 편안한 낮은 시트높이.

680씨씨의 이기통 엔진의 힘과 자동차식의 자동/수동 트랜스미션의 지연이 거의 없는 단단한 힘전달.

멋진 스타일.

그런데 좀 비쌌다.

그리고 덜 실용적이었다.

수납공간 제로.

여러 것을 잘 하는 것 같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일등을 못하는 비싼 물건.

 

그러다가 새로 나온 신형 TMax의 선전을 봤다.

와~

다시 샀다.

현금으로 정가를 다 주고 첫 선적된 수입차의 거의 마지막 것을 샀다.

구형보다 더 잘 서고 더 탄탄하다.

더 멋지다.

더 새거다.

머플러도 좋은 소리 나게 가벼운 티탄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구형 티맥스의 단점들은 신형 티맥스에서도 여전히 내게 단점으로 남았다.

그래두 갖고있고 싶었지만, 돈이 필요해서 팔았다.

그렇지 않고 CBR을 팔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GSR-125를 도난 맞았다.

타이어도 바꾸고, 요시무라의 머플러도 달아주고, 브레이크 패드도 바꾸고, 심지어 방풍스크린도 달아주고 겨울용 손주머니도 달아주었는데.

내가 사랑하던, 딸에게도 3주간 혼자 전국투어란 추억을 남겨줬던, 쥐에쓰알이 내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GSR-125에서 거의 유일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파워를 보강할 수 있는 250씨씨의 스쿠터를 구했다.

일제는 너무 비쌌고, 이미 시그너스와 GSR에서 대만산 스쿠터의 우수성을 신뢰하게 되었기에 대만 TGB사의 XMotion-250을 샀다.

그런데 이놈이 골치 덩어리였다.

그래서 고쳤다.

공장에 가서 계기판과 전기 조절기도 워랜티로 교체하고 뒤소바도 바꾸고.

그래서 탈만 하게 됐지만, 충분히 빠르게 달리고 잘 서지만.

이놈은 앞뒤 서스펜션이 나쁘고/딱딱하고, 다시 나에게는 결정적으로 시트고가 너무 높아서 불편하고 위험하다.

그래도 내가 탄 오토바이나 스쿠터 중 테니스라켓이 안장밑 트렁크에 들어가는 놈이 이것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GSR-125의 신형인 GSR NEX125를 샀다.

그리고 엑스모션을 팔려고 내놨다.

그런데 안팔린다.

그래서 잘 팔릴 넥스125를 내놨다.

하루만에 팔렸다.

 

그래서 다시 엑스모션을 타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구석진 상황으로 몰고가도 나는 이미 불편한 엑스모션을 타지 않는 거다.

그러니 생을 즐겁게 해주는 오도바이를 타지 않게 되는 거다.

 

다른 곳에서 사용할 용도로 귀여운 야마하의 비노도 샀다.

흠, 귀엽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놈은 나에게 바이크가 주는 자유로움을 주지 못한다.

이놈만 타면, 너무 느려서, 주변의 온갖 차들이 다 무서워진다.

 

그래서 한달 전에 다시 넥스125를 샀다.

예쁘고 저음의 존재감이 풍만한 새 머플러도 달아주고, 밝디 밝은 HID전조등도 있다.

물론 무시하고 접근하는 네발차들을 엄중하게 경고할 수 있는 쌍에어혼도 깊숙히 숨겨두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놈은 어째 아직 길이 덜든 탓인가 가속과 최고속이 구형인 GSR-125보다 (약간) 못하다.

 

그래도 좋다.

이렇게 사고 팔면서 한두바퀴를 돌고 나서 이제야 나는 안다.

세상에 내맘에 꼭 드는 물건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래서 CBR954RR은 예외적으로 특별한 물건이다.

세상에 내맘에 꼭 드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져 가고 내 마음도 변해만 간다.

꼭 내 마음이 변덕스러워서만도 아니고 대상이 변화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본질을 알아갈수록 장점과 함께 약점도 보이고, 내가 더 알아 갈수록 나는 늙어가고 동시에 나의 기준치는 높아만 간다.

어떻게 보면 이 물건들은 다 다양한 소비자들을 몇가지 집단으로 나눠서 겨냥한 대규모 소비시장의 타협된 제품인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좋아 보이더라도, 아니 좋아 보이도록 교묘히 이미지화 되거나 소문으로 들리더라도, 이미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예민해진 입맛을 갖게된 감성적인 개인들의 특정한 바램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세상을 사는 지혜는 타협이고 사랑이다.

차가운 머리로 대상이 나의 이상과 다름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난 후에는,

그의 소수의 부족한 점들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의 다양한 장점들 사랑하고 나와의 공통점들을 고마워하면서 어울려 살리라.

그가 한낱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대량 생산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참, 내가 얘기했던가?

바이크가 아니 스쿠터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흰쌕이" (GSR NEX125): 0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