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3시 50분.
장소는 소리도 연도항 (내) 방파제 안벽.
약 30분 전에 곤하게 자다가 뭔가 요란한 소리에 깼다.
학생들은 모두 어제 같이 저녁을 먹은 민박집에 가서 오랫만에 목욕하고 (배에서는 추우니까) 따뜻하게 자겠다고 가서 배에 없다.
밥을 잘 먹고 학생들이 먼저 배에 간 다음 민박집에서 목욕을 잘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나서 보니 내 전화기의 소리다.
전화기에 보니 이미 세번이나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하게 전화를 거니 학생말이 배에 화장실에 물이 들어와서 현재 화장실이 꽉 차고 마루까지 물이 흘렀다는 것이다.
마루의 물을 닦았냐고 물으니 아직 안 닦았단다.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래된 뱃사람들의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배가 침수할 때 가난한 뱃군과 바께쓰만한 배수펌프가 없다. (There is no pump better than a poorman's bucket.)"
그런데 젊은 장정 네명이 그것도 요트부 학생들이 배의 심장부인 마루에 물이 들어와서 찼는데 전화를 세번 거는 동안 아무도 그 물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가 막혔다.
그래서 빨리 닦아 내라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5분여를 걸려 배에 와보니 이미 마루바닦은 닦였다.
그동안 지저분했던 바닦이 물청소를 해서 내눈에는 오히려 오랫만에 깨끗해 보였다.
앞 화장실에 가보니 바닦에는 아직 물이 가득하다.
훑어보았더니 변기 옆에 샤워꼭지 (온수와 냉수) 두개의 위치가 90도 다르다.
즉, 하나는 열려있고 하나는 닫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 혹시 샤워꼭지를 건드렸냐고 하니 아무도 않 건드렸다고 한다.
화장실 빌지펌프의 (학생들에게도 사용법을 이미 다 가르쳐 준) 스위치를 누르니 화장실 바닦의 물이 벌컥벌컥 빠지기 시작한다.
힘들게 계류가 일단 된 후에 학생들 중 하나가 식당을 찾으러 가고 나는 실내에 내려와서 실내의 지저분한 것들과 내 사물들을 대강 정리하고 전화를 확인 후 전화를 하는 사이에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식당에 갔다.
전화가 와서 보니 다들 식당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수도의 압력스위치를 켜고 지저분한 식당 싱크대를 깨끗히 닦고 정리하면서 계속 물을 썼다.
그리고는 식당에 가기 전에 수도 압력 스위치를 끄고 나갔다.
그 사이에 내가 모르는 훨씬 전에 내가 사용하지 않는 앞 화장실의 샤워꼭지가 수도압력이 없는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열려지고 물이 않나오니까 그 상태로 열려진 채로 있었고 내가 청소를 하려고 싱크대에 남은 밥풀 등을 제거하고 닦느라고 수도물을 사용하느라고 수도물 압력을 만든 것이다.
그 압력이 학생 중 누군가가 연 그 꼭지를 통해서 내가 부억 싱크대에서 일하는 동안 앞 화장실 바닦을 채우고 내가 압력 스위치를 끄고 하선한 후에도 남아있던 압력에 의해 계속 물이 넘쳐 마루 바닦까지 넘쳤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항구에 들어오기 몇시간 전에 항해 중에 한 학생이 화장실 배출 모터를 너무 오래 계속 작동시키기에 내가 갑판에서 왠일이냐고 물었고 그 학생은 변이 내려가지 않아서 계속 그렇게 누르고 있다고 대답했다.
바로 그 학생이 자기는 수도꼭지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을 한다.
어쨋던 그렇게 한바탕하고 내 설교가 있은 후에 학생들은 자러 민박집에 가고, 나는 혼자서 대강 한바퀴 돌아보고 들어와서 다음날 항해에 대해 해도를 펼쳐놓고 향해선을 (여태까지와 달리) 세개를 연필로 긋고 항해각을 산정한 후에 항구의 개요와 정보를 읽고 본 후에 항해 중에 읽기 시작한 "악에 관한 세편의 대화"의 2장을 마치고 쎈 바람소리를 들을면서 싸늘한 공기 속에서 따뜻한 침낭과 오리털이불 속의 따뜻함을 즐기면서 잠에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새벽에 오줌이 마려운데도 추워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참고 자다가 요란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일어나서 손전등을 켜고 보니 새벽 3시15분 정도 되었다.
소리는 뒷침실 앞에 위치한 엔진룸에서 나고 있었다.
엔진룸 문을 열고 불을 비춰보니 자동 빌지펌프가 물이 없는데도 막 돌아가면서 빨아들이니 물이 없으니 공기가 들어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계속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때 들리던 요란한 바람소리가 없어서 사방은 고요한데 배가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평소 조용할 때도 들리는 배 뒷바닦에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도 전혀 없고, 파도에 의한 흔들림도 없다.
이상하다.
소리도 없고, 흔들림도 없다.
큰 손전등을 켜고 선실에서 계단을 올라서 콬핏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밀어열고 위로 올라가서 천과 비닐로 만들어진 파일롯하우스 얖 창을 쟈크로 열고 밖으로 나가니 계류줄을 묶은 항구의 벽이 검게 높이 다가온다.
물이 많이 내려갔다.
배 옆에 보이는 벽에 손전등의 불에 비춰진 곳에서는 초록빛의 해초들이 잔디같이 예쁘다.
썰물에 따라 배가 점차 아래로 내려가자 쎈바람에 부두에서 밀려나는 배에서 부두로 나가기 쉽게 평소보다 짧게 묶은 무어링라인이 문제였다.
배는 부두의 든든한 쇠고리들에 다섯가닦의 밧줄에 팽팽하게 매달려서 배옆에 매달아 놓은 세개의 펜더 중 하나를 짓누르며 빠져나간 바닷물에 간신히 바닦 일부만 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밧줄에 매달려서 펜더를 콩크리트 직벽에 누르면서 20톤의 무게를 기대고 있으니 밑바닦에서 조금씩 찰랑대는 물이 배를 밑바닥을 치지도 못하고 흔들지도 못하고 소리도 못내면서 부두에서 완전히 밑으로 배가 내려가서 부두 위에는 마스트 일부만이 나와 있으니 배에서는 바깥의 바람소리도 거의 들리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이젠 어쩔 수가 없다.
더 정박줄을 보탤 수도 없고, 펜더를 더 설치할 수도 없다.
수심계를 보니 1.6미터, 배의 침수선 높이이다.
참았던 소변을 시원하게 누고, 오랫만에 "2010년 조석표(한국연안)"을 펼쳤다.
소리도 연도항은 없지만, 오늘 가려고 하는 주변의 거문도의 자료와 그중 가까운 고흥의 자료를 펼쳤다.
일단 어제밤 1월15일이 음력 12월 1일 마침 그믐날이고 오늘은 1월 16일 다음날이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믐에는 달과 해가 나란히 서니 당연히 중력이 한쪽으로 합해져서 그 힘에 바닷물도 한쪽으로 확 쏠리겠지.
거문도의 1월16일의 자료는 04시01분에 42센치미터로 하루 중 제일 물이 낮은 때이다.
내가 깨어나 이 조석표를 보는 03시30분에서 아직 조금 더 물이 내려가야 한다.
저 팽팽한 줄들이 좀 더 버텨줘야 한다는 말이다.
처음에 볼 때는 (아직 잠에 덜 깨서 아직 1월 15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믐달에 03시30분에 47센치로 거의 수면이 최하에 달했다고 약간은 안심을 했는데,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닌 것이다.
조금 지나서 지금은 04시55분, 이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
밖에 나가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제 오후 늦게 (17시30분 경) 내항에 들어오다가 배가 가장 낮은 곳에 킬이 잠간 닿았다가 10분여만에 빠져나온 낮은 부분에서 물이 들어오면서 아마도 거의 바닦이 들어나서인지 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미 바닦에 킬이 닿아 배의 모든 무게가 킬위에 얹혀있기 때문이라고도 보인다.
그러니 저 배 뒷부분 내 선실 옆벽에 눌린 스치로폴 펜더가 저 정도만 찌그러진 것이겠지.
이것은 오히려 안심이 되네.
하여간 매일이 모험이고 알게 모르게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Everyday is an advanture!
아마도 이래서 재미있는 것이 크루징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오늘 낮과 같은 따뜻하고 조용하고 넓은 바다의 낭만이 한시간 짧게 있었다면, 긴 기주 시간과 항만정보와는 다른 항만입구와 쎈바람과 싸우며 정박줄을 매고 당기던 시간에 샤워 중에 걸려 온 전화에 배에 물이 침수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달려와 상황을 살피고 판단하고 야단치고, 추운 데서 웅크리고 오줌마림도 참고 자다가 예외적인 고요함 속의 요란한 소음에 일어나고, 안심하고 이상해서 나가보고 경악하고 어쩔 수 없음에 포기하고, 다시 공부하고 안심하고 이렇게 차가운 공기 속에서 노트패드에 정리하는 괴로움과 긴장의 시간들이다.
여기에 크루징의 단면이 있다.
조금의 즐거움과 많은 색다름, 그리고 긴장과 사고의 시간들.
하루가 길고 길다.
테레비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서 살찌는 하루보다 엄청 길다.
내가 어제 저녁에 학생들처럼 민박집에서 따뜻하게 잤다면, 세상이 이리 불안함을 알고 느낄 수가 있었을까?
과연 그들이 내가 지난 12시간에 내가 느낀 것의 십분의일이라도 알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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