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수리!!!와 항해

2010.2.8: 새벽에 한달만에 집에 오다.

cool2848 2010. 2. 8. 12:26

역시 집이 좋다.

아직 무지 추운 돌덩이 같은 집이지만.

밤 1시반이 넘어 들어오는데, 어두컴컴한 나무 사이를 고양이가 어슬렁 나타난다.

내 발자국 소리에서 자기 밥을 연상했는지.

사료통을 흔들어서 남은 사료를 먹도록 해줬다.

 

가방들을 집에 들여놓고, 보일러를 올렸다.

전기난로도 켰다.

그래도 춥다.

 

대충 정리하고 추운 이불 속에서 두꺼운 츄리닝과 덧신을 입고 신은 채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 일어나 밥을 해서 먹고싶던 가재미식혜와 따끈한 밥을 먹었다.

흐음~

 

어제 저녁에는 창녕에 들려 부모님을 뵜다.

그리고 보니 신정에도 구정에도 않내려 갈텐데, 절을 않했다.

어쨋던 집안에 조그만 변화/사건이 있어서 내가 좀 알아봐야 할 일들이 생겼다.

엄마는 내가 자고 가지 않는다고 걱정이시다.

내가 생각해도 부산에서 창녕까지 한시간반도 않되게 운전했는데 이상하게 피곤했다.

곰곰히 생각하니 한달동안의 여행에서 쌓인 피로로 이틀을 해운대에서 쉬었는데도 내가 쉽게 피곤해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더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다.

 

이제 오전 중에 샤워도 하고, 편지들도 정리하고, 오늘 만날 친구들과의 약속도 문자치고, 팔 예정인 스쿠터의 빠테리에도 챠저를 물려놨다.

그리고 드디어 컴퓨터에 앉았다.

그런데 그전에도 항해를 하면 한동안 손이 다 붓고 손가락들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더욱 더 하다.

이번에는 계속되는 밧줄을 잡고 당기고 묶는 일들 때문에 손과 손가락만 부은 것이 아니라 손가락 끝이 거의 다 까졌다.

이렇게 뱃사람의 손이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이런 손가락으로는 악기에도 테니스에도 적합하지 않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아니 둘을 버려야 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인지도.

 

이번 한달 간의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잃었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는가?

즐거웠는가?

무슨 목적으로 시작했고, 어떤 결말을 만들었는가?

 

첫째, 원래의 목표와는 다른 여정이었지만, 나는 이번 항해와 여행을 통해 <크루징(cruising)>이 무엇인지를 보다 잘 알게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여행 속의 <쎄일링(sailing)>의 역할과 여행에서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과 (섬)나라들.

둘째, 한국에서의 크루징이 빈약한 인프라로 아직도 즐겁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다는 직접적인 체험과 자각.

셋째, 배를 가지고 여행하므로 인해 생기는 배를 지키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과 비용들.

넷째, 그래도 많은 것들이 새로웠고 즐거웠다.

다섯째, 주어진 배를 모르는 승무원(crew)를 매번 구해서 같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과 도전, 그리고 성취감도 있었다.

 

나의 이번 항해는 세가지 단계로 나우어진다.

(1) 요트부 학생들과의 남해안 여러섬 항해:

1.11~1.17 간 매물도, 욕지도, 소리도, 거문도, 제주도로 입항하다가 행원항에서 좌초하는 과정까지의 거의 쉴새없는 항해의 연속과 익숙해지는 팀웤과 쎄일링, 그리고 파일롯팅.

(2) 요트부 학생들이 김녕항에 입항 후 같은 날 다들 떠난 후, 제주도의 항해인들과 만나서 제주도의 여러 항으로의 항해와 계류:

1.17~2.4 간의 다양한 쎄일러들과의 김녕항, 위미항, 화순항, 서귀포항을 오가고 며칠씩 계류하면서 내가 제주도에 머물면서 생긴 일들.

(3) 2.4~현재 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뒷처리 기간: 2월말 전에 부산으로 배를 가져와서 사고난 킬아랫부분과 스캐그앞부분, 여러 쎄일의 수리와 떨어진 클리트, 해치, 스탠치온 부위 등을 고치고 정리해야 할 시간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왜 이리 마음에 와닿는지.

아끼는 배가 쎈 바람에 콘크리트 직벽에 졸음 사이에 부딪힐 때 얼마나 마음에 아프던지.

매일 매일이 사건이라는 것이 여름에 동해안 이후의 첫 장기 항해인 제주도에서도 왜 여전히 법칙처럼 맞아야 하는지.

나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출렁대는 배와 함께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정말 나는 이런 항해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아직도 미리 써놓았던 내용들도 적지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기 전에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배로 크루징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한 회의들.

이젠 바이크로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들에 대한 회의도.

여행을 가면 편하게 가고 싶다는 희망도 생긴다.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아름답게 보일지는 몰라도 춥고 불편한 낭만보다는 가까운 현실의 따뜻함과 배부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진실을 왜 이리 보기가 힘드는지.

하나하나 글을 다시 쓰고 기억을 살려나가면서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올해는 내 생애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