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영화와 책, 음악회,..

09/3/23(월): 두남자의 산티아고순례 이야기

cool2848 2009. 3. 23. 06:13

 

지난 금요일 모처럼 야외로 드라이브를 갔다.

특별히 갈 곳이 없고 길지 않은 드라이브이기에 몇번인가 가 볼 생각이 있던 헤이리에 있는 황인용씨의 음악실 <카메라타>를 가기로 하고 차를 몰았다.

헤이리가 있는 곳은 잘 알지만 실제 들어와 본 것은 거의 처음이다.

얼마 전에 들어와 봤지만 잠시 스쳐만 지나갔다.

들어와 보니 참 좋았다.

얕으막한 언덕들이 굽이져잇고 수풀 사이로 커다란 그러나 특이한, 어쩌면 너무 특이한, 디자인의 집들이 하나씩 모습을 보인다.

 

두어번 물어 카메라타가 있는 건물에 도착.

막상 오니 정문을 발견했지만 열려있는 것 같지 않다.

건물은 무지 폐쇄적이다.

 

들어가니 커다란 공간이 있다.

들어가면서 정면에 보이는 벽이 온통 스피커다.

내가 어디선가 본 스피커가 있는 스피커들로 찬 그 벽이다.

그 사이에 몇그룹이 앉아있다.

입장료는 만원이라고 써있지만 돈받는 사람은 없다.

그래 일단 자리를 잡고 카운터 뒤에 부억에 가서 사람을 찾아 돈을 냈더니 머핀은 마음대로 가져가고 주문 후 몇분 후에 커피는 준비될 것이라고 한다.

 

바이올린 곡이다.

샤콘느 라고 앞족의 조그만 칠판에 쓰여있고 멀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앨범카버가 보인다.

 

지금은 새벽 5시반.

커피가 맛이 있고 어제 사온 생 베이글이 맛있다.

크림치즈는 없다.

집에서 가져온 전제덕의 하모니카 소리가 좋다.

오른쪽에 있는 전기오일라지에타의 은은한 온기가 좋다.

 

어제밤에는 일찍 잤다.

한시간반쯤 전에 오줌이 마려워 깼다.

어제 맥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옆배에서 얻어먹은 늦은 아점 후, 좀 일찍 배부른 저녁과 쇼핑을 마치고 평소보다 너무 일찍 자서인가 보다.

그래서 잘 때 읽던 책을 마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읽었다.

 

바이올린 소리는 괜찮았다.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다음의 교향곡인가는 더 좋았다.

나는 교향곡을 잘 않듣지만.

소리가 무리가 없다.

적은 음량을 가진 사람이 억지로 부르는 노래방의 목소리같지가 않았다.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균형감과 다이네믹스가 좋다고 느꼈다.

디테일의 부족은 LP자체의 문제였을지도.

 

커피도 맛있었다.

마시고 머핀 먹고 음악을 듣는 사이에 해가 지는 것이 높은 천창 사이로 조금 보였다.

그것을 빼면 이곳은 철저히 폐쇄된 음악공간이다.

아마도 나가면서 본 미국설계자협회(?)나 한국건축가(?) 상을 비춰보면 의도된 폐쇄성일 듯 하다.

그런데 클래씩음악만 틀어준다.

조금 더 있다가 나왔다.

 

나오면서 카운터에 보니 왠 책이 세워져 있다.

재미있는 색갈의 커버가 돌려 보니 책의 제목에 <...산티아고 순례...>라는 말이 보인다.

아~

이책이 <제주 올레>(?)라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의 저자가 영향을 받았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행기이구나.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산티아고가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인 줄 알고있었다.

어쨋던 20% 가격인하라는 말도 써있는 책을 집어들고 카운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저자가 있으면 싸인을 해줄텐데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읽고 보니 저자 중에 한사람이 황인용씨의 아들이다.)

 

 

어제 오후에 지나친 테니스를 치고 샤워와 맥주와 구운 생돼지고기로 저녁도 잘 먹고 나서 시간이 될 듯하여 마지막 기차로 부산을 내려오면서 그제 산 챙겨온 새책을 읽기 시작했다.

껍데기가 재미있다.

못생긴 안경쓰고 모자쓰고 판쵸 속에서 담배를 입에 문 두남자의 얼굴이 노란 들판과 빨간길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성당과 조그만 집들의 도시가 보인다.

접힌 앞 껍데기를 펴면 흙길이 있고 길게 좁아져가며 길게 있고 좌우는 짙은 초록의 어두운 풀밭이다.

기차에서 피곤해서 자다가 읽다가를 반복하다 부산에 도착했다.

 

아마도 일찍 자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책을 읽고싶어서인 것 같았다.

그래서 피곤에 떨어지기 전에 책을 더 읽었다.

내 나이 또래의 화가와 내 큰딸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30대의 젊은이가 여러 다양한 나이의 친구들과 스페인 북부 경계의 불란서 마을 생장프드포르에서부터 스페인 서부 대서양 해안 부근의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까지를 옛날 야고보가 걸었다는(?) 전설의 길을 34일 동안 걸은 기록이다.

두 다른 남자들의 별 깊은 생각이 없는 걸음의 기록이다.

그러면서 뭔가 의미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중주같은 이야기이다.

다른 나이의 다른 성격의 두 남자.

한사람은 만화같은 즐거운 그림으로 한사람은 깊이가 보이듯 말듯한 약간은 어두운 사진으로.

각자의 가볍고 깊이있는 생각들로.

나 자신의 양면성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아니면 나와 큰딸을 보는 듯한 기분과 함께 재미있게 내면을 들여다 본다.

재미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와서 다시 자지않고 책을 계속 읽었다.

결국 조금 전에 다 읽었다.

 

내 시간과 딸이 괜찮다면 이번 여름에 같이 이길을 걷고 싶다.'

아니라면 혼자라면 자전거를 가져가서 빠르게 이길을 달려보고 싶다.

그리고 제주올레길도 가보고 싶다.

 

가볍다.

쉽다.

재미있다.

그림과 사진이 많다.

그림만도 재미있고 사진만도 좋다.

엑스트라도 나온다.

다이어트랑도 관계될 수가 있다.

걷기와 사고의 관계를 음미하게 된다.

 

강추!

(사진을 줏으러 예스24에 가서 보니 거기 독자리뷰도 다 별5개였다.)

 

밖이 훤해 온다.

동쪽이 붉다.

하모니카로 듣는 <친구>, 듣기가 너무 좋다.

세상은 아름답다.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