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제 가배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중에 하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가배량성 성적에서 볼 수 있는 역사에 대한 관심.
이곳은 이순신 장군께서 옥생활을 하시기 전에 통영에 통제영을 설치하기 전에 우수영 통제영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가배량성은 또한 (현재 남아 있는?) 거제도에 있는 성적 중에 제일 큰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가배항을 포함하는 성적은 임진왜란 전에도 거제도에서 나는 특산물등을 육지로 수송하는 항구 중에 하나로도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일단, 현재 남아 있는 성적의 유물들이 더 이상 소실되지 않도록 현상을 알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또한, 이 성과 연관되어 특히 육지쪽을 포함해서 다른 곳과 연락하는 봉화대에 대해 알아보고, 찾는 것이 중요할 듯 하다 (이선장의 구체적 아이디어).
그래서 내가 인터넷 검색과 더불어 가배량 남쪽 성적이 있는 봉우리인 안산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 것들이 진전이 되면 가칭 "거제 가배량성 연구회"를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작은 일본의 연구회와 비슷한 형태로 구성해 볼 일이다.
가배량성에 대한 거제시청의 참조 글:
http://blog.daum.net/geojecity/157
거제의 봉수에 대한 박물관 2016 전시회 참조 글:
http://www.geojemuseum.or.kr/ycw_board/view.htm?Bid=news&page=1&Bno=220
거제 옥녀봉 봉수 (내용 후반에 "가배량에 남망 봉수"가 "대동지지"에 있다는 언급이 있다.
http://blog.daum.net/dbsqkqh/4955
봉화대에 대한 참조 글:
http://ko.mythology.wikia.com/wiki/%EB%B4%89%ED%99%94%EB%8C%80
위의 봉수에 대한 글에서 채취한 내용: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인근과 중앙에 전하던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사용된 군사적 목적의 통신방법이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봉수(烽燧)는 고려시대에 정례화 되고, 조선 초기에 정비돼 수백 년을 유지했던 봉수제도는 1894년 폐지됐다.
이듬해는 봉수를 지키던 봉수군도 철수됨에 따라 군사통신 시설로서의 봉수와 연대의 터전은 급격이 퇴락됐다.
전국에 500기가 넘게 남아 있는 봉수는 부산, 울산 등 경상도에 170기 이상이 있다. 경상도의 봉수는 구조나 형태 또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거제도에는 이번 호에 소개할 강망산 봉수를 비롯해 가라산 봉수, 능포 봉수, 지세포 봉수, 와현 봉수, 옥녀봉 봉수, 율포진 별망 등 모두 7기가 있다.
강망산 봉수는 거제시 덕포동 해발 361m인 강망산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뻗어 내린 구릉이 약간 평지를 이루는 해발 228.7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북쪽으로 진해만을 사이에 두고, 부산 가덕도 천성보 봉수를 마주 보고 있다.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02호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다.
처음 만든 시기는 문헌기록이 없어 명확하지 않지만 15세기 대에 처음 지어져 18세기 대에 개축을 했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또, 구조적으로 조선 전기에 설치한 거제도의 옥녀봉수와 비슷해 같은 시기에 쌓아 만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거제에 가라산 봉수와 등산, 남망, 옥림산, 눌일곶, 가을곶 봉수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율포의 가을곶 봉수가 강망산 봉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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