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2014. 3. 15: 문학장님 문병

cool2848 2014. 3. 16. 02:34

올해 78(?)세의 문학장님은 우리 테니스클럽의 최고령 명예회원이시다.

 

현재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지만, 뇌출혈(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에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거의 매일 일산에 있는 자택에서 테니스장으로 오셔서 어울려 한두 게임을 같이 하셨다.

물론 고령이니 움직임이나 파워는 없지만, 체육인 출신이니까 게임 운영도 능하고 앞에 오는 볼은 잘 처리하신다.

 

나와는 운동 후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약 삼개월 전에, 내가 아버지 건강문제로 정신 없을 때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이미 몇년 전에 두번 같은 증상으로 뇌수술도 했다고 들었는데, 금지되어 있는 일이지만 술 드시는 쎄기/도수와 양이 줄기는 했어도 막걸리나 복분자주 한병 정도는 식사 때마다 드시고 가끔 담배도 피셨다.

한동안 중환자실에 계셔서 병문안도 갈 수 없었고, 이후 곧바로 지방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그후 소식이 없다가 지난 주에 의식을 회복했고, 인천에 병원에 계시는데 병문안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자기 오후에 있던 개인 레슨이 연기되어서 오후에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병문안을 갔다.

클럽을 대신해서 병원 내에 있는 꽃집에서 화초 화분을 세개 골라서 꽃집사장과 같이 들고 갔다.

 

6명이 있는 입원실에 갔더니 학장님이 눈으로 나를 먼저 알아보신다.

입원실과 치료비는 육이오 때 소년(16세)학도병으로 참전하셔서 나라에서 월 17만원의 보상금과 함께 의료비가 지불된다고 하며, 6인실에서 공동으로 4명의 간병인들을 24시간 고용하여 그 1/6을 개인적으로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

머리는 깍았지만 워낙 깔끔하시던 신사 스타일이 침대에서도 유지되는 인상이다.

사모님께서 마침 옆에서 계셔서 인사드리고 안부를 물었다.

 

눈은 총기가 있으시고 말은 다 알아들으신다고 하는데 말씀은 어눌하고 내가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상체 하체 모두 움직이지 못하신다고 한다.

한시간여 같이 얘기하고 손도 만져 드리고, 같이 오려던 코치없이 혼자 온 이유와 자주 가던 고기집 여사장님의 안부도 전해드렸다.

자주 사모님께서 목에 있는 유동식 투입구의 마개를 열고 가래를 제거했다.

 

움직이지는 못하시지만 그래도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좋았다.

입원해 계신 외과병동의 과장이 사위이기도 하여 치료와 회복에는 큰 걱정이 없을 듯하며, 미국에서 돌아온 아들도 의사이니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지만 보통 6개월 전에 기능이 일부라도 돌아오지않으면 희망이 없다는데 이미 3개월이나 지났으니 상하체 움직임의 가능성은 벌써 멀어지는 것 같다.

 

만날 수도 없다가 내가 잊기도 해서 병문안을 못했다가 미뤘왔던 일을 했다는 부담감도 해소됐다.

오가는 길도 막히지않아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고 세시반 정도에 집에 와서 오랫만에 덕분에 테니스장에 가서 근래에 드물게 다섯 게임이나 하고, 이어 몇명이서 저녁식사와 술을 (맥주, 복분자, 빼갈 한두잔 씩) 하고 나는 기분좋게 취해서 집으로 왔다.

 

중간에 보니 블로그 친구분들이 오늘 점심 때부터 양재에서인가 출발해 걷기하기로 한 날이다.

카톡에는 이들의 접선 세부사항 등이 잔뜩 왔다갔다.

어디 다리 밑에서 한분이 시를 낭독하고 또 한분은 하모니카를 불었다고 한다.

 

이삼일 춥다가 바람은 좀 불었지만 맑고 완연히 따듯해진 진정한 봄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