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번 제주도에 들렸지만, 매번 삼사일을 넘지 못하고 돌아오는 짧은 방문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약 3주일 이상을 제주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제주도에 이번에 있으면서 생각나는 점들을 적으면 아래와 같다:
아름다움, 쌀쌀함, 바람, 김영갑, 에메랄드빛 바다, 검은 암초, 거센 파도, 제주도 사투리, 43사태, 배타적, 평범하지않은 사람들.
이중에서도 이번 방문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의 외로움과 함께 쌀쌀함이며, 그 속에서 강하게 살아가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김영갑이라는 예술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젊은 때부터 단지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꿋꿋이 갈길을 갔던 사진가.
김영갑갤러리과 그의 에세이는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남겨주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는.
그러나, 제주도에는 이미 죽은 김영갑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Fred Dustin교수님도 계셨다.
더스틴교수님은 미국인으로 육이오 때 군인으로 한국에 오셔서 계속 제주도에 거주하는 분으로 안다.
제주대학교에 교수로 봉직하셨고, 정년 퇴직에 자신의 힘으로 김녕에 있는 만장굴 바로 옆에 나무를 하나 하나 심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미로공원을 만드셨다고 한다.
얘기하다 보니 수십년 우리동네에 같이 사시다가 몇년 전에 돌아가신 만리포의 식물원을 만든 밀러씨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
현재 김녕이 제주도에서 쎄일링빌리지가 되는 기반이 된 김녕국제쎄일링클럽의 발기와 폰툰제작과 쎄일링교육등 쎄일링 기반 인프라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한다.
김녕미로공원에서 나오는 이익금의 80%를 제주도의 다양한 일들에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항상 즐거우시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이시다.
원래는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주자라고 하시는데 이제는 연주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미 썼지만, 윈드서핑이 좋아 제주도 어촌의 작은 집에서 사시며 채소와 닭, 강아지를 키우며 살아가는 양선생님의 얘기도 이미 전했다.
멋지고 젠틀한 스포츠맨이면서도 음식과 연주와 정원을 가꾸는 전인적인 인간을 보았다.
젊은이들에게 장기항해를 통해 입시준비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인한 존재와 인성교육을 꿈꾸고 계획하는 표선생님도 계시다.
아직 꿈을 현실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고비가 있지만, 항해를 통해 교육과 훈련을 시도하는 평범하지않은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다.
주말마다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패밀리맨이었다.
김녕항을 내려다 보는 카페623(?)이란 제주일주도로 옆의 예쁜 커피집의 성사장님도 남달랐다.
십수년 전에 서울에서 내려와 김녕항 바로 앞에서 항과 바다를 내려다 보는 커다란 창문과 나무난로에서 하루종일 거의 사람이 않찾아와도 혼자서 음악을 들으시며 책을 읽으시다가 나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반가이 커피를 끓여주시고 세상 얘기를 조금 하다가 서로 다시 책으로 돌아가 조용히 나무타는 향기 속에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분이었다.
매번 카페가 아니라 그분의 집에 놀러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이 있지만 리무진버스를 개조한 캠퍼에 사신다는 의사분도 남달랐다.
아직 그 캠퍼를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제주도에 가면 같이 타고 한번 그속에서 자보고 싶다.
집 마당에 주로 세워놓지만, 제주도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드는 곳에 세워놓고 며칠이고 살 수 있다니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사람이다.
사진가인 한국부인과 같이 사는 독일인 랄프도 조용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와서 스쿠바다이빙을 배우고나서 서귀포에 제주도에서 유일한 외국인 스쿠바샾을 가지고 있다.
바쁘지않은 비수기에는 30피트짜리 카타마란을 샾 뒷마당에서 삼년째 만들고 있다.
올해 말이면 완성한다고 한다.
호주 출신인 영어교사인 쎄린도 특이하다.
노처녀인데 전직이 어부이다.
여럿이 타는 고깃배에서 갑판원이었다.
제주도에서는 해녀학교를 졸업했고(?), 해녀들과의 숨참기내기에서 다른 해녀들을 다 이기고 해녀가 된 외국인 영어교사이다.
현재 신안앞바다 유물에 관해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노처녀인 트레이시도 재미있다.
말을 잘하고 (영어) 매력적인 이 사람은 반은 마우이족이라고 하는데 제주위크리의 편집자이다.
스리랑카에서 아프리카 케냐까지와 시드니호바트 경기의 델리버리선장 등의 장기항해의 경력이 많고, 노후에는 요트를 사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남다른 계획을 가진 사람이다.
80이 가까운 퇴직한 영국신부님인 제리도 있다.
어려서부터 희망이 뱃사람이었다는 오래된 항해 경험을 가진 젠틀한 신부님이다.
아직도 배 위에서는 차근차근 지저분한 밧줄을 정리하며 항해를 즐기시고 게스트 교회일을 맡으시는 신부님.
신부님보다는 제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뉴질랜드에 이민가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대형 레조트의 스포츠 담당 김팀장.
스마트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신세대 장년(?).
그래서인지 한국사람같지 않은 한국사람.
다들 쎄일링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다들 토박이 제주인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이들이 서울이나 부산에 살면 이렇게 알게 되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 특이하게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간은 황량한 제주의 바위와 들판에서 이들은 강하고 끈질기게 보였으면, 배타적인 사람들과 자연에 어울리면서 나름대로 나에게는 가장 제주적으로 보였다.
내가 이번에 본 제주는 이런 사람들이었다.
상당히 특이한 그러면서도 오픈된 쉽게 만나고 깊이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그런 강인한 인격들이었다.
내 제자나 고등학교 운동부 동기들 보다도 이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한 그런 사람들이다.
나는 이번 겨울에 이렇게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들을 보았다.
아마도 앞으로 제주도의 다른 측면과 다른 제주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튀는 사람들을 가진 제주도, 늦게나마 조금이나마 알게되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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