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난 1월 11일 새벽에 시작해서 며칠 전인 2월 21일 오후에 끝난 남해안과 제주도 항해에 대해 아직 제대로 다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일부만 쓴 상태이지만, 아무래도 직장일로 마음을 완전히 뺏기기 전에 지난 한달여간의 일들에서 내가 느낀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싶다.
(이글은 지난 2월8일자로 쓴 글의 후편 정도가 되겠다.)
결론: 크루징은, 적어도 겨울철의 한국에서는, 내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혹자는 한국에서 겨울에 항해를 할 수 있다면 세계 어데서나 힘들지 않게 항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도 그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도 않지만.
또 혹자는 포기하기 전에 캐리비안에 있는 BVI(브리티쉬 버진 아일란드)같은 곳에서 배를 빌려서 타보라고 하지만.
한국은 아직 편하게 크루징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크루징에 미쳐서 나의 다른 모든 것들을 팽개치고 오직 이길만이 나의 인생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지만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내게 인생은 즐겁고 때로는 의미있고 편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한달여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고 나는 그것이 싫다.
나는 더러워진 머리와 목욕을 못한 몸에 냄새나는 털모자와 더러운 옷을 입고, 며칠씩 불어대는 바람에 밀려 부딪히는 배 위에서 배가 상하지나 않을까를 걱정하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까를 주로 걱정하며 나날을 보냈다.
나는 바위에 배를 얹었고, 강풍에 돛을 찢었고, 항구의 콘크리트에 배를 부벼대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아끼는 배에 대해 좋은 주인이 못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과 돈과 노력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왜 나는 이런 일을 하는지.
이렇게 앞으로 일년을 보낸다고 뭐를 얻을 수 있을까?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섬, 그리고 따뜻하고 편한 항해가 된들 도대체 그게 뭐가 그리 나에게 의미있는 일이 되겠는가?
말로는 생각으로는 세계의 2/3가 바다이고 내배를 사서 나 혼자서 자유롭게 그 넓은 바다 어디던지 마음대로 자유롭게 가보고 싶다고 했다.
배가 나에게 이동의 자유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적어도 2010년 1월과 2월 한국의 겨울바다에서는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배로 갈 수 있는 곳은 아주 제한적이었고, 그곳들에서 마저도 배는 나를 자신에게 꽁꽁 묶어놓았다.
배가 나에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나는 배로 인하여 묶여버렸다.
나의 자유는 내 배가 빼았아가버렸다.
자유로의 낭만적 바램은 자유의 제약으로 현실화 되었다.
나의 다른 일들은 많은 것들 중에 하나였다.
직장이 그러하였고, 바이크가 그랬다.
최근에는 테니스가 그러하였다.
다들 밀고 밀리면서 나름 같이 나를 위해 공존하였다.
그런데 크루징은 나의 모든 것을 거의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다른 것들은 항해에 대한 끝나지 않는 할일들이 급하지 않아야만 그 다음에나 할 수가 있었다.
다른 것들이 취미적인 행위였다면, 크루징은 라이프스타일이고 전혀 다른 삶 그 자체였다.
크루징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내 삶에 많은 것 중에 하나로 쎄일링을 꼽는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을 크루징 하나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가 아닐까.
오히려 나의 삶에서 나는 크루징이 아닌 쎄일링이, 굳이 크루징이라면 주어진 기간의 가벼운 크루징이, 나의 취미활동 중에 하나로 자리맥임하기를 바란다.
이제 내 나이 (만) 57세.
직장을 아직 몇년은 더 다닐 수도 있지만, 왜 다녀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크루징이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생생한 의미를 줄 것 같지도 않다.
어쨌던 나는 이번 여름부터 내년 여름까지의 일년을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의미있게 확실히 살고 싶고 그렇게 되도록 계획하고 싶다.
어떤 의미를 찾고 싶다.
아니면 최소한 즐겁고 싶다.
행복하지는 못할 지라도.
인도사람들은 인생의 첫 30년간인 제1기에 자라고 배우고 빚지며, 둘째 30년간인 제2기에는 일로서 사회에 그 빚에 보답하고, 나머지 제3기에는 나름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 쓴다고 한다.
이제 나에게 그런 제3의 인생이 다가오고 있고 이번 1년은 그런 작업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게 하고 싶다.
크루징을 포기하면서 나에게 떠오른 대안은 장기여행이다.
바이크나 차를 타고, 아니면 구간과 상황에 맞게 걷거나 배를 빌려타는 등의 여러가지 수단으로 다니면서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대룩을 여행하는 생각을 검토 중이다.
아웃사이더적인 삶의 태도를 보면 기록을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게으름은 나에게 충실한 기록자가 되지도 않게 만든다.
이건 지난 5년 간의 블로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여행을 즐기고 싶지, 그 여행의 기록을 위해 즐거움을 반감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왠지는 모르지만 기록을 충실히 하고 싶은 욕구는 있다, 아직.
나름 의미를 느끼고 싶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름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정리해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싶다.
아파트, 배, 차, 바이크들, 자전거들.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진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버릴 수 있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빈 속에 세상을 마음껏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직도 나에게는 지난 일년여 내가 투자한 시간과 돈과 정력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나간 일에 연연하기보다는 나의 남은 인생을 위해 과연 무엇이 보다 의미있는 일일까 다시 판을 바꿔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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