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견인당했나?
YES.
내 잘못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내배에서 일어난 일은 다 선장인 나의 책임임에 분명하다.
여러번 왕래가 있던 송원장님이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와 친하신 정선수랑 오셔서 일요일 아침 항해를 하게됏다.
전날 자정이 넘게 내려와서 만나서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거제도를 갔다오던지 가덕도인가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계속 조금씩 오던 비가 더 온다.
아침에 아무도 바다에 없다.
모니터하는 무전기에서는 항무부산 12번채널에서 큰배들과 교신하는 내용 중에 풍랑주의보란 말도 나왔엇다.
나중에 보니 실제로는 아직 풍랑주의보는 아닌 듯 했다.
어쨋던 나는 이런 비에는 출항을 한적이 없지만, 맛있는 생대구탕을 잘 얻어먹은 후에 분위기가 이 두사람은 이런 정도의 비는 전혀 문제시 삼지 않아서 예전의 나같으면 그냥 춥고 비맞는게 싫은 게으른 성격 때문에 당연히 집에 돌아와서 테레비나 봤겠으나, 나도 그냥 마리나로 가서 출항준비를 했다.
9시 정각 무렵 대충 준비가 됐고, 마리나 내의 바람은 별로 없어서 큰무리 없이 폰툰을 떠나 두세번 작게 꺽어서 항내을 벗어나 수영만에 나갔다.
(아직도 출항 전에 리스트를 가지고 모든 중요한 일들을 확인하는 형식화된 리츄얼이 안된다...)
수영만 앞바다에서 천천히 진행하면서 돛을 올렸다.
두사람 다 이배는 두번째라던데 무어링라인도 잘 올리고 돛도 잘올리고 이어서 내가 적당히 버려둔 배 갑판에 헐겁게 묶여있던 물건들을 잘 고정해서 묶는다.
그런데 내가 조타석을 송원장에게 넘기고 조타휠 앞에 있는 주 챠트프로터가 gps신호를 잡지 못해서 내려가서 뭘 좀 하고 올라와서 조금 있다가 엔진이 섰다.
그리고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
출항후 약 25분 후이다.
몇번이나 엔진을 돌려보지만 않된다.
두사람에게 의논했더니 일단 엔진이 죽었으니 먼 바다로 나가서 엔진을 살려보잰다.
그래서 점점 거세지는 파도와 바람을 맞으면서, 게다가 비, 남쪽으로 향했다.
들이치는 파고는 약 2-3미터 나중에는 최대 4미터 정도도 있었던 듯.
풍향은 오전에는 동풍이었다가 오후에는 북북서풍 이었던 듯.
풍속은 수영만 부근에서는 6에서 8노트였으나 수영만에서 벗어나 육지에서 남쪽으로 멀어지면서 15노트에서 18노트 정도 됐다.
두 사람의 쎄일 트리밍은 아주 좋았다.
오래 전에 타본 후, 처음으로 크루잉을 하면서 내가 얘기할 것도 없이 잘 했고 나중에는 나에게 한두가지 제안도 해주었다.
물론 정선수는 뛰어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프로중에 에이스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송원장도 매주 한강에서 갈고 닦는 쎄일링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어쨋던 내가 보통 수년간 이배를 타온 전선주와 이배를 타면 조타휠에서 느끼는 강력한 웨더헬름(whetherhelm: 바람이 오는 풍상으로 배가 오라가려고 하는 경향/힘) 을 조정하려고 몸의 한쪽에 기울이면서 힘을 줘야 하는데, 이들은 비에 젖어서 텔테일(telltale: 돛에 위아래 안팍으로 달려있는 작은 털실로 쎄일의 쎄팅이 적절한가를 날림으로 표시해줌)이 쎄일에 붙어 날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트리밍한 돛은 웨더헬름이 거의없이 스므드하게 잘 달리게 한다.
부산항으로 들어가는 항로를 지나서는 바람과 파도가 다 크다.
그래서 나는 축범을 해야 하지않나하고 평소 때의 상황과 비교해서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일단 배는 무리없이 잘 달리고 8노트에서 9노트 사이를 내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웨더헬름도 없어 조타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한번 커다란 파도를 만나서 선수가 파도 밑바닦에 잠시 배바닦을 친 것을 제외하고는 점점 커지는 들이치는 파도 속을 배는 힘차게 달린다.
기분이 좋다.
다음날 정선수에게 다시 물어보니 쎄일이 제대로 트리밍되면, 약간의 웨더힐름은 어는 배에나 자연스럽게 남아 있지만, 웨더헬름이 거의 없어야 정상이라고 한다.
여태까지는 계류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바다에 나가 쎄일링할 때 적정한 쎄일 트리밍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슥미슥하다.
한번 선실에 들어갔다가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들어가자마자 급히 나오고야 말았다.
내가 드디어 멀미를 하는 것이다.
배에서 잔지가 이미 몇몇달이 지나고, 이젠 부산에서도 육상에서 편히 자다보니 그런가?
그런데 송원장도 멀미가 심하다고 한다.
정선수만 굿굿.
근데 워낙 말이 없어서 어쩐지도 잘 모르겠다.
나도 점점 참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데 토해지지가 않는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마지막으로 토해본 기억이 1983년인가 여름에 결혼하러 유학에서 들어와 지금 돌아가신 장인을 만나뵙고 주신 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따라 마시다가 집에 타고 오던 택시에서 급하게 내려서 서강대 담벼락 앞의 가로등 아래에서 토한 것이 마지막이자 거의 성인으로서의 첫 토함이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타고 다른이들의 멀미를 미소로 즐기다가 이제 나도 멀미가 나는거다.
어쨌던 부산항으로 가는 항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오륙도가 가물가물 보일 때 돌아가서 광안대교 밑을 지나가 광안해변가 앞에 앵커를 하고 배를 고쳐보자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아오다가 우편에서 부산항으로 들어가는 크지 않은 화물선을 발견햇다.
점점 각이 넓어져서 우리가 그 앞을 무사히 통과할 것 같았지만, 옆에 잇던 송원장이 상대가 진행 우선권이 있으니 상대 배의 뒤로 가자고 말한다.
나는 우리가 쎄일링이고 저쪽은 기선이니 우리가 우선권이 있다고 말하다가 보니, 이곳은 항로 내라고 생각되어 양보하기로 하고 가까이 왔을 때 급선회하여 상대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나면서 보니 그배의 갑판에는 아무도 없는 듯하고 전혀 우리가 가까이 있는데도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듯 싶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않나지만 송원장의 그때 판단과 말이 맞다: 상황을 우리가 콘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게 좋다.
상대의 뒤쪽으로 진로 변경해서 가는 것은 우리에게는 문제가 없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사고의 여지가 거의 없지만, 만약 계속 진로를 변경하지 않고 갔는데 판단보다 상대가 빠르고 상대가 우리의 존재를 모르던지 자신의 우선권을, 맞던 틀리던, 주장해서 진로변경을 하지않아서 만약에 충돌 직전에 이르면 그때는 우리가 콘트롤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저쪽배에서 우리배에 무선 연락도 없었고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고동도 울리지 않았다.
우리배는 좋은 바람 하에 돛단배로는 매우 빠른 9노트 정도의 속도로 안개와 비속에서 부산항에 근접한 항로에서 그 배의 진행방향 앞을 지나가는 상황이었다.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따질 필요도 없이 송원장 말처럼 할 것이다.
다만 진로 변경을 하기 전에 무선 교신을 시도하고, 변경할 때에는 고동을 하나 길게 불어줘서 내가 우측으로 진로변경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점점 멀미는 심해지고 있다.
계속 안개와 비 속에서 광안대교가 보이지 않다가 오른쪽으로 달맞이언덕이 보이고, 해운대도 보인다.
점점 광안대교에 가까이 가고 있는데, 너무 쎄서 걱정했던 바람이 갑자기 약해지고 방향도 바뀐다: 6노트 북풍.
대신 바람의 바뀌어진 방향으로는 광안대교로는 너무 각도가 안나와서 방향 전환이 없이 그냥 올라갈 수가 없다.
정선수가 너무 풍상으로 올라가서 러핑(luffing: 바람을 거슬로 올라가기 때문에 돛이 바람에서 힘을 받지 못하고 펄럭이는 상태)으로 가는 상태는 속도가 너무 떨어지니 어느정도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택킹을 여러번 반복하는 것이 낫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클로즈홀드(close-hauled: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바람을 거슬리면서 올라가는 것)로 너무 풍상에 가깝지 않게 탄력을 받아가다가 다시 광안대교와 평행하거나 약간 멀어지는 방향으로 꺽어서 가다가를 두세번 반복하면서 드디어 광안대교 밑을 지나갔다.
지나가서도 세네번 택킹을 더해서 광안리해변에서 멀지 않은 한 가운데에 배를 풍상으로 대고 선수에서 둘이 앵커를 내렸다.
미젠쎄일(mizzen sail; 뒷 마스트의 돛)은 풍상으로 배가 방향을 잡게 안정시켜 주니 내리지 말자는 송원장의 말에 우리는 제노아와 메인세일만 내렸다.
이제 배는 앵커에 물려서 북풍에 배를 광안리해변으로 정면으로 향하고 미젠쎄일의 힘으로 더 안정되고 뒤에서 밀려드는 파도에 배 뒤편이 약간 왼쪽으로 밀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allright.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해서 증상을 얘기하고 엔진의 상태를 확인했으나, 나는 이때 선상에서 심하게 토하면서 선실로 내려가지 못했다.
두 사람이 일단 12볼트 엔진 빠테리를 내말에 따라 직렬로 연결해서 다시 엔진 스타트를 시도해봤으나 계속 엔진은 걸리지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엔진의 분사제트를 풀고 펌프를 작동해 연료가 올라오나를 확인하는데 거의 올라오지를 않는다.
연료계통의 문제이다.
거의 모든 엔진의 문제는 전기의 문제거나 연료계통의 문제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엔진 문제를 잡아야 할듯.
드디어 기다리던 김선장이 작은 요트를 몰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천친히 천천히 우리 배를 끌고 마리나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는 크게 원을 돌면서 우리 배 폰툰으로 끌더니 폰툰 바로 앞에서 갑자기 급선회해서 빠지면서 우리배에 연결된 밧줄을 풀었다.
이제 우리배는 타력으로 우리 폰툰으로 흘러들어간다.
폰툰에는 연락받은 전선주가 우리 배의 밧줄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약한 북풍으로 배는 안전하게 천천히 폰툰에 잘 접안했다.
송원장이 김선장의 견인 중 특히 맨 나중의 접안 직전의 부분이 예술^*이었다고 감탄했다.
나도 특히 여름의 낚시배에 견인되었을 때의 상황이 생각나서 김선장과 이 부분에 대해 미리 의논했지만, 정말 마지막 부분이 예술이었다.
*친절한 설명:
견인하는 배가 견인되는 배를 주어진 선석의 공간에 넣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뒷배는 자력으로 못가는 상황에서 배를 긴밧줄로 연결해서 끌고 가다가 뒷배의 사이즈만한 공간에다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던져주는 겁니다.
이해하기 좋도록 예를 들자면, 엔진이 꺼진 차를 긴 쇠사슬로 연결해서 끌고 가다가 원하는 주차장의 빈자리에 들어가도록 해주는 겁니다.
다만, 배의 견인에서 더 어려운 점은 차에서처럼 배에도 방향 전환할 수단은 있지만 엔진이 망가진 배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평소 엔진을 꺼꾸로 돌려서 브레이크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너무 약하면 제대로 안 가고 너무 강하면 부딪힙니다.
물론 끌려가던 뒷배의 선장이 주어진 선석(배가 들어가는 공간)으로 방향을 적당히 조절하는 일 정도는 해주어야 합니다
설명 끝*
그래서 오늘 쎄일링은 나쁜 기상에 나쁜 파도에 나가서 엔진이 멎는 나쁜 상황을 맞았지만, 아주 좋은 쎄일링을 했고 쎄일트리밍에 대해 확실히 배운 것도 있고, near-miss에 가까운 충돌이 생길 지도 모르는 상황에 가까이도 가면서 대응책과 권리를 생각해 볼 기회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돌발 상황에 대해 적절히 대처해나가면서 잘 대응했던 교훈적인 경험이 됐다.
어떻게 사고 않나는 날보다 사고 나는 날이 더 많은 듯 한게 내 요트 생활의 일상이 된 것 같다.^^
작년 10월말 코리아컵국제요트대회 때의 조난 시의 쎈바람과 큰파도와 준비않된 작은 배로 할 방법이 없는 데서 느낀 정신적 쇼크로 인한 나의 무력감이 요트 타기의 재시작의 시작점이었다면, 오늘 수영만 앞바다에서의 멀미와 토증이라는 형식의 육체적 쇼크로 인한 무력감이 내 요트생활에 또 다른 중요한 기억할 경험이 될 것 같다.
과연 나에게 요트생활이 맞는 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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