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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 ‘가배량성’

cool2848 2017. 2. 22. 21:41

 

 

 

거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 가배량성

 

 

가배량성(加背梁城)은 거제시에 남아 있는 성 중에서 성곽둘레 1574m로 가장 큰 규모다.

치소성인 사등성지(성곽둘레 924m)와 고현성지(818m)는 물론 역이 있던 오양성지(1150m)보다 더 큰 규모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10호로 지정(19911223)돼 보호되고 있는 가배량성은 동부면 가배리 산17-1번지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석축성이다.

 

 

 

 

이 성은 조선 성종 19(1488) 6월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성으로 처음 축조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돼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우수영을 설치했고, 그 때 지금의 성을 축조했다.

선조 34(1601)에 체찰사(體察使) 이덕형이 오아포에 있는 통제영을 시찰하러 왔을 때, 이곳이 통제영으로 적당하지 못하다고 조정에 건의해 삼도수군통제사 유연이 이곳에서 고성군 춘원포로 통제영을 옮겼다.

선조 37(1604) 다시 고성현 두룡포(현재의 통영)로 통제영을 이전함과 동시에 고성 남쪽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가배량성으로 불리게 됐다.

2010년 경상문화재연구원의 가배량성 지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추정문지 4, 7, 해자 흔적 등이 확인됐다

.

                 

 

                                                                                                    [가배량성 배치도]

 

 

지표조사에서 수습된 유물은 동체부편, 수키와, 암키와, (), 자기편, 분청사기편, 백자저부편, 자기 저부편 등이 출토됐다. 전은 잔존하는 남동쪽 체성 위에서 확인됐고, 와편(瓦片)은 전 구간에서 확인됐다.

체성은 민가가 들어서 있는 북동쪽과 바트 과수원으로 경작하고 있는 북서쪽을 제외하면 외벽둘레 약 620m, 내벽둘레 약 605m, 높이 3~4m, 최대 너비 약 3m로 남동쪽 체성 부분만 양호하게 남아있다.

체성을 쌓는데 이용된 축조기법은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장대석을 지대석으로 사용했고, 그 위에 자연대석을 기단석으로 쌓아 올린 방식과 두 번째는 맨 아래쪽에 잡석을 깔고, 그 위에 자연대석을 기단석으로 쌓아 올린 방식을 사용했다.

문지는 추정 문지 4곳을 확인했다. 동문지는 해강도예예술학교 남동쪽 옆의 소로에, 서문지는 가배용접소 주변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훼손이 심해 흔적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추정 동헌지내 주초석]

 

 

                

                                                                                                    [추정 서문지 지대석]

 

남문지는 치3 서쪽 약 5m 지점으로 약간 평탄한 지형으로 앞쪽은 성돌로 보이는 자연대석이 무너져 있어 그 규모 및 형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북문지는 치7 주변으로 추정되지만 경작지로 이용돼 훼손이 심해 명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치는 추정치 2곳을 포함해 모두 7곳이 확인됐다. 4와 치5는 원형을 추정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지만 나머지는 치는 잔존상태가 불량했다.

해자의 흔적은 너비 약 10m, 깊이 약 2.5m로 체성2구간과 치7 주변에서 확인됐지만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범위와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체성은 성의 남동남서쪽 약 620m 구간의 잔존상태가 양호할 뿐 나머지는 잔존 상태가 아주 불량하다.

고지도에는 가배량성 안에 통제영의 관아와 망루, 객사 등 다양한 건물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민가가 들어서 있어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다.

이 성은 포구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봐서 왜구의 침입을 막는 중요한 목적 외에 다른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제는 경남 내륙에서 낙동강을 따라 남해와 서해를 거쳐 서울로 운반하는 조운로(漕運路) 로 배로 조공을 실어 나르는 조운선(漕運船)의 보호하고, 어선에 대한 보호 및 감시도 하는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 유적으로는 만호선정비로 추정되는 비석이 가배142-2 천남실(千南實) 씨 집 뒷담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대석 부분은 시멘트 바닥에 묻혀 있는 상태로 꽃무늬 양식의 가첨석을 받치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마모가 심해 누구의 비석인지 알 수 없지만 가배량진 만호의 비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비의 높이는 70, 너비 42, 두께 12, 가첨석은 가로 64, 세로 13, 높이 40.

 

 

출처 : BlueCity Geoje
글쓴이 : 거제시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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