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왜인지와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유학시절에 사귀던 어린 여자친구.
나보다 나이가 차이가 많이 나서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던 VK.
지금 그 이름을 생각해도 마음이 설렌다.
나는 왜 VK와 헤어졌나?
당시 난 그 학교에서 지도교수와 같은 유대인인 대학원책임교수의 발언을 문제로 학과장에게 공식으로 불평절차를 밟고 만족스럽지 못한 퀄리파잉시험 뒤에 그 학교를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VK는 미국의 대도시로 이민온 집 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잘생기고 같은 학교에서 한인 학생회장도 하는 의대입학이 허가된 아주 모범생인 나와 같은 분야의 오빠를 두고 있었다.
어쨋던 나와 몇 대학원생도 참가한 주로 학부생들의 파티에서 만났던 것 같다.
나중에 보니 VK는 내가 묶는 대학원생 기숙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학부생들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나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은 길 건너 이 기숙사 대형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참 이쁘고, 착하고, 서글서글한 VK.
내가 VK와 사귈 때 내가 VK를 가지고 놀다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내 머리 속에 없었고 절대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귄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근처에 유학온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양사장과 두시간 거리의 대도시로 가서 VK집에 찾아갔을 때 VK부모님들을 만나보고 양사장의 말을 듣고는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지 말던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VK의 아버님은 차분한 인상에 당시에 미국 대도시에서 한인들이 많이 하는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 여건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미국에 오실 때는 재즈로 유명한 버클리음대에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하였다.
둘이서 걷던 추웠던 시골 대학교의 교정이 생각난다.
교회탑 밑에서 내가 안경의 테두리를 통해서 삐뚜로 보였던 빼족한 탑이 휘어지지 않았냐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방학이 시작되던 날 집으로 돌아가던 날 밤새 잠을 못자고 안타깝게 새벽을 새던 기억도 난다.
학교 근처에 커다란 저택에 놀러 갔을 때 갖고간 과자를 우리가 옆에 있는 동안 다 헤쳐서 먹던 새들 때문에 웃던 기억도 난다.
키와 체격이 작지 않아/커서 내 팔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싸우는 일도 없고 무엇이던지 다 좋았던 것 같다.
당시 우리가 젊은 때에 7살인가 8살의 나이차는 엄청난(?) 크기라서 뭐든지 내가 더 많이 아는 것 같았고, 나에게 꼼작도 못하던 VK.
일방적인 관계를 분명 원칙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래도 아주 좋았고 나에게 순종적이라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좋았다.
그래도 나는 뭔가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후 학교를 옮기기 전과 옮긴 후에 두어번 다시 학위논문 마감을 위해서 이 지역으로 와서도 부근 대도시로 VK를 찾아가기도 했고 푸른 호수가 공원 잔디밭에서 딩굴기도 했고 밤에 당시 내가 타던 오래된 쉐보레차를 타고 데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결혼을 한다던지 내가 떠난 후에 휴학을 하고 집에서 쉬는(?) VK와의 관계를 다시 이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총각이었고, 처녀는 항상 주위에 있었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를 찾기 전에는 그 여자가 모르는 사람이던 여자친구이던 좋아한다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VK야.
그때처럼 불러본다.
지금도 보고 싶다.
VK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를 많이 좋아해준 VK.
내가 그 학교를 떠난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고민했을까?
나중에 나를 많이 원망했을까?
이제는 갓 20살 전후의 젊음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어 50중반이 되었겠다.
어느 하늘 밑에서 살고 있을까?
왠지 서글서글한 성격과 몸매에 맞게 애들도 잘 낳고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벌써 손자손녀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착한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니가 몇십년 후에도 이렇게 문득 나타나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소중한 추억이듯, 나도 너에게 행복한 추억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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